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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에도막부에서 쇄국정책을 했다가 메이지유신을 한건가요?

일본의 경우 대항해시대 초창기에는 엄청난 쇄국정책으로 유럽문물을 안받았다가 메이지유신 이후에 쇄국정책을 풀엇던걸로 아는데 왜 갑자기 스탠스를 바꾼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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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에도 막부는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런데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되게 됩니다. 이미 중국 등 주변국이 서구에 의해 개항되거나 식민지 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일본 지도층은 변화를 모색하게 됩니다. 특히 개항 이후 서양 상품 유입으로 서민들의 삶이 어렵게 되면서 존왕양이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결국 1868년 막부가 타도되고, 왕정복고를 이루어졌으며,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화인 메이지유신이 단행된 것입니다. 막부 체제로는 더 이상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었고, 중앙집권적 천황제와 서구식 제도를 도입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에도막부 시절 일본이 쇄국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여 내부 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기독교가 빠르게 퍼지는 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막부 권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지방 영주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는 것도 막고자 했습니다.

    이에 따라 외국과의 교역을 극히 제한하고, 일본인의 해외 출입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며 약 200년 이상 국문을 닫은 상태로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 시위를 벌이자, 더 이상 쇄국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내항한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막부는 개항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막부의 권위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국내외적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일본은 체제 전환을 모색하게 됩니다.

    결국 1868년 메이지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바뀌고, 신분제를 철폐하며 군대, 산업, 교육 등 전 분야에서 근대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이는 일본이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피하고, 오히려 아시아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쇄국에서 개국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외교 변화가 아니라 일본의 생존과 주권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