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신 관점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왕망·동탁·조조·사마의를 묶어 부르는 이른바 망탁조의라는 표현은 후대의 평가가 굳어진 결과인데, 여기에는 진나라의 단명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사마염이 위를 선양받아 세운 진은 통일 후 불과 삼십여 년 만에 팔왕의 난으로 무너졌고, 곧이어 영가의 난과 오호십육국의 혼란으로 이어졌지요. 중원이 수백 년간 분열된 출발점이 진의 실패였으니, 그 왕조를 연 사마씨 집안의 시조 격인 사마의에게 부정적 평가가 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가 더 겹칩니다. 하나는 고평릉 사변의 방식입니다. 낙수의 맹세를 걸고 조상의 목숨을 보장하겠다더니 삼족을 멸한 일은 당시 기준으로도 신의를 저버린 처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촉한 정통론입니다. 송대 이후 제갈량을 충신의 표상으로 세우면서 그 대척점에 선 사마의는 자연히 음험한 인물로 그려졌고, 삼국지연의가 이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굳혔습니다. 다만 군사적 능력만 놓고 보면 맹달 토벌과 요동 평정 등 실적이 뚜렷해서, 능력과 도덕성을 분리해 봐야 공정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