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근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순종시대에 김좌근이라는 인물이 세도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하던데요 어떤인물인지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좌근은 다음과 같은 인물입니다.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형조판서,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을 3번 연임한 문신입니다.
그 뒤 예조판서·형조판서·훈련대장·공조판서·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세 번씩이나 보직되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1862년 삼정문란으로 발생한 각지의 민란을 진정해보려는 의도에서 설립된 이정청의 총재관을 맡기도 하였으나, 1864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하자 실직에서 물러나 실록총재관으로 『철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뒤 영돈녕부사로 1866년 기로사에 들어갔다.
인품은 정량(곧으면서 맑음)하고 공평하였으나, 안동 김씨 세도정치시기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역사에 끼친 영향이 컸다. 시호는 충익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순조 ·헌종 ·철종 때 관직을 지내고, 1853~1863년 영의정에 세 번이나 보직되어 안동김씨의 중심인물로서 세도정치를 폈습니다.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영의정에서 물러나 실록총재관으로 《철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정치가. 자는 경은(景隱), 호는 하옥(荷屋), 시호는 충익(忠翼). 본관은 안동(安東). 1838년 문과에 급제했다.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중추적 인물로서 1839년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ㆍ1842년 이조 판서ㆍ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ㆍ공조판서, 이듬해 대사헌ㆍ1846년 병조 판서를 역임했다. 1850년(철종 1) 우참찬(右參賛)ㆍ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ㆍ금위 대장(禁衛大將)ㆍ형조 판서를 거쳐서 이듬해 훈련 대장(訓鍊大將)ㆍ공조 판서, 1852년 우의정을 지내고 이듬해부터 1863년까지 영의정에 세 번 보직되어 세도를 누렸다. 그간 1862년 이정청(釐整廳)이 설치되자 총재관(摠裁官)이 되었으며, 1864년(고종 1) 흥선 대원군의 등장으로 영의정을 사직하고, 실록 총재관(實錄摠裁官)으로서 《철종실록(哲宗實錄)》편찬에 참여, 1868년 삼군부(三軍府)가 설치되자 영삼군부사(領三軍府事)가 되었다.
출처 : 인명사전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인 김좌근은 1819년(순조 19)에 생원이 되고 부수(副率)·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을 거쳐 1838년(헌종 4) 판관으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교리(副校理)·직각(直閣)·대사성·이조참의·공조판서·이조판서·한성부판윤·대사헌·병조판서·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고 합니다.
1850년(철종 1)에는 우참찬·제학 겸 지실록사를 거쳐 총위영(總衛營)을 총융청(總戎廳)으로 개편, 총융사(總戎使)를 맡고 이어 금위대장 등 무직(武職)의 수뇌부를 관장하여 당시 혼란한 사회를 무력으로 진압한적도 있던 그는 그 뒤 예조판서·형조판서·훈련대장·공조판서·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세 번씩이나 보직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