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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왜 여불위를 죽이지못했나요?

비록 직접적으로 반란에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진시황은 여불위를 노애의 반란에 엮어서 숙청했는데 그럼에도 그를 죽이지못하고 지방으로 보내는것으로 끝낼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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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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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불위는 진나라의 정치가로 장양왕의 신뢰를 얻어 승상까지 됩니다. 진시황의 아버지 장양왕 사후 모친의 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불위는 정(진사황)이 자라면서 태후와의 관계가 오히려 자신에게 위험할 것이라 직감하고 노애라는 남자를 태후에게 소개합니다. 태후와 노애는 두 아들까지 둡니다. 그 뒤 노애는 총애를 등에 없고 승승장구하지만 밀애가 발각되었고, 모반을 꾀하다 진압되어 거열형으로 처형됩니다. 여불위도 승상직을 잃고 칩거하였는데, 공로를 평가해 죽이지는 않았어요.

    기원전 236년, 여불위는 자신을 찾는 객들과 여러 다른 나라와 모의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진시황은 여불위에게 "나라를 위해 한 일도 많지 않으면서 무슨 염치로 이제껏 중부로 불리며 호사를 누립니까?"라고 힐문 촉지(蜀地)로 갈 것을 명했고, 자신의 최후를 깨달은 여불위는 절망한 나머지 이듬해, 스스로 독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여불위는 애첩을 자초에게 주었는데 그녀는 훗날 진시황의 생모가 된 조희였습니다이 때문에 진시황의 친아버지가 여불위 라는 설이 있지요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여성을 남에게 주는 일이 전국시대에 종종 있었기 때문에 사마천 시기까지만 해도 정설로 받아들여진 듯하지만 카더라 하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십중팔구 이 가설을 채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불위는 왕족이기도 하였기에 곧바로 처형하기엔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일부가 여불위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여불위를 유배시키는것이 더욱 나은 선택이였기에

    처형하지않고 유배를 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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