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중대는 유비가 조조와 정면 대결을 하지 말고 먼저 형주와 익주를 확보해 독자적인 근거지를 마련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내부 정치를 안정시키고, 손권과 동맹을 맺고 위나라가 혼란이 생기면 진격해 한 왕조를 부흥시킨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비는 한 황실 후예로 명분은 있었지만 군사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조와 손권은 막강했습니다. 따라서 조조와 손권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따라서 방어에 유리한 형주·익주를 확보하고 내정을 안정시키는 단계적 전략이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구상이 촉한의 영토 확보와 북벌 방향을 결정했기 때문에 국가 전략의 근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