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 전투라는게 언제 시작한거고 뭔지 알수있나요?
송산 전투는 무엇인가요??
송산이 지역 이름인가요?
어느 나라끼리 치뤄진 전투인지, 언제 일어나게 된건지, 결과는 어떻게 된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송산(松山) 전투는 명청전쟁의 전투로 1641년에서 1642년에 걸쳐 벌어진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의 전투를 말합니다.
일련의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송산에서 금주(錦州)에 걸쳐 있어서 중국에서는 송금지전(松錦之戰), 송금전투(松锦戰鬪), 또는 송금대전(松锦大戰)이라고 부른다.
홍승주가 지휘한 10만 명 이상의 명나라 정예군이 금주에 고립된 조대수를 구원하고자 출진하였으나 결국 청태종이 이끄는 청군에게 완파되었고, 구원군이 격파된 것을 알게 된 조대수 역시 곧 항복하였다. 이 전투에서 정예 병력을 다수 상실한 명나라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대규모 군대를 동원할만한 역량을 상실하였고, 결국 2년 뒤 이자성의 반란군에 의해 멸망하였다.출처: 나무위키 송산전투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송산(松山) 전투는 명청전쟁의 전투로 1641년에서 1642년에 걸쳐 벌어진
명과 청 사이의 전투이다.
홍승주가 지휘한 10만 명 이상의 명나라 정예군이 금주에 고립된 조대수를
구원하고자 출진하였으나 결국 청태종이 이끄는 청군에게 완파되었고,
구원군이 격파된 것을 알게 된 조대수
역시 곧 항복하였다. 이 전투에서
정예 병력을 다수 상실한 명나라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대규모 군대를
동원할만한 역량을 상실하였고,
결국 2년 뒤 이자성의 반란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출처: 나무위키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송산 전투는 1592년 조선 왕조의 제7대 임금 성종 때, 일본의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발생한 임진왜란 기간 중 일어난 전투 중 하나입니다.
전투는 1592년 7월 29일, 일본의 장수 이다시 마사유키(伊達政宗)와 이방원(李芳遠)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송산 지역에서 일어난 이 전투는 일본군과 조선군 양측 모두 치열하게 싸우며, 결국 일본군이 이겨 대대적인 추격전으로 이어지면서 조선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전투를 계기로 일본군은 한국의 다른 지역으로 전국적으로 전략적으로 진격하며, 임진왜란은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지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41년 송산 전투는 산해관 이북 송산 금주에서의 명과 청의 전투로 청나라 지르갈랑의 4만 대군이 명나라 조대수가 수비 하던 1만 병사의 금주성을 공격하자 조대수의 원군 요청에 따라 영원성을 수비하던 명 장군 홍승주 (병부상서 국방장관) , 오삼계의 13만 대군이 산해관을 나와 송산과 금주 사이의 산악지대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전투 결과 명군 6만이 전사 대패한다고 합니다. 이 전투는 명군과 청군의 세력 균형을 결정 짓는다. 명나라가 멸망하는데 계기가 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송산 전투는 조선시대 16세기 말에 일어난, 장기전 중의 일부인 전투로, 대전에서 시작된 전투가 경기도 양평 송산에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전투는 조선 후기의 2대 왕 세조와 왕자 김시민 사이의 반란 사태로, 김시민이 삼도 지배권을 두고 일으킨 반란이 실패하자, 그를 지지한 일강도와 이씨의 일부가 연합하여 세조에게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세조는 김시민과 그 지지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이 과정에서 송산 전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전투는 1567년 8월 27일부터 10월 14일까지 계속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세조군이 승리하였습니다. 이 전투는 이씨 일강도를 진압하고 조선의 안정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송산 전투는 조선시대 중기의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이후의 장기전에서도 전쟁의 기법과 전략 등에 대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송산(松山) 전투는 명청전쟁의 전투로 1641년에서 1642년에 걸쳐 벌어진 명과 청 사이의 전투이다. 일련의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송산에서 금주(錦州)[2]에 걸쳐 있어서 중국에서는 송금지전(松錦之戰), 송금전투(松锦戰鬪), 또는 송금대전(松锦大戰)이라고 부른다.
홍승주가 지휘한 10만 명 이상의 명나라 정예군이 금주에 고립된 조대수를 구원하고자 출진하였으나 결국 청태종이 이끄는 청군에게 완파되었고, 구원군이 격파된 것을 알게 된 조대수 역시 곧 항복하였다. 이 전투에서 정예 병력을 다수 상실한 명나라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대규모 군대를 동원할만한 역량을 상실하였고, 결국 2년 뒤 이자성의 반란군에 의해 멸망하였다.[3]출처- https://namu.wiki/w/%EC%86%A1%EC%82%B0%20%EC%A0%84%ED%88%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