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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태종에게 화살을 쐇다고 하는데요?

태조는 곤룡포를 입은 태종에 분노하여 화살을 쐇다고 들었는데 어떤 부분에서 분노 해서 화살을 쏘게 된건가요???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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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Slow but steady
      Slow but steady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성계가 화살을 쐈다는 이야기는 서울의 '살곶이다리'에 얽힌 설화로 전해지며 <연려실기술>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태조는 다른 형제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아끼던 정몽주 마저 죽이자 더 이상 그를 아들로 인정 하지 않고 미워 하게 되는데 직접 함흥에 까지 차사를 보내자 화살을 쐈다고 합니다.

    •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고 또한. 자신이 지금 왕위에서 물려나고 어려운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에 분노하고 노해서 그렇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는 왕자의 난으로 형제를 죽이고 공신들을 제거한 이방원에게 화살을 날렸지요. 이방원은 조선을 왕권중심의 나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에 반해 정도전은 조선을 재상 중심의 나라로 만들고 싶었지요. 이방원은 이성계 못지 않게 개국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정몽주가 고려왕조를 계속 유지하려하자 정몽주를 오죽교에서 제거하고 힘들고 피를 묻히는 일을 해왔지요.결국 조선왕조가 개창되었지만 방원은 세자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에는 정도전 등의 견제가 작용했습니다. 이에 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켰지요. 이성계는 형제간의 살육이 일어난 것에 크게 화를 내고 했지요. 하지만 이성계의 후계자는 실력과 힘으로 방원에게 돌아가는 역사적 흐름이었고 이를 되돌리기 어려웠습니다. 방간, 박포의 난이라 불리는 2차 왕자의 난까지 방원이 승리하여 방원이 왕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정종 역시 이런 상황을 알았기에 왕위에서 일찍 물러났지요 방원은 아버지가 함흥에 물러나 있어 한양으로 모시길 원했고 함흥으로 차사를 여러차례 보냈지만 차사들은 죽고 돌아오지 못했지요. 이렇게 해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성계는 고향땅에 묻히길 원했지만 방원은 아버지를 곁에 모시고자 했습니다. 결국 고향땅의 흙을 가져와 잔디가 아니라 억새로 묘를 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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