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륜이 경주로 발령받은 이유가 있을까요?
하륜이 표전문 사건을 명나라에서 해결하여 공을 세웠음에도
중앙 관직에서 벗어난 경주로 좌천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공을 세웠는데 왜 벌을 줬을까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여러 신료들의 일대기를 정리한 «국조인물고»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정축년(丁丑年, 1397년 태조 6년) 정월에 정도전이 군사를 출동시켜 국경을 나가려고 논의하면서, 공을 꺼려 계림 부윤(鷄林府尹)으로 내보냈다."
하륜이 표전문 사건을 해결하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핵심 인물인 정도전이 함께 명나라에 가서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럴 경우 정도전은 명에서 죽을 게 분명한 일이었죠.
아무튼 이 일 때문에 하륜은 정도전에게 견제받았고, 그래서 계림부윤으로 좌천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도전과의 갈등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는 명과 표전문 문제로 정도전을 보내자고 했으나 정도전이 거부하자 권근, 노인도 등과 함께 명에 갑니다. 하륜은 정도전을 변호했지만 이때 함께 갔던 권근, 노인도, 정탁은 억류되고 혼자만 귀국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1396년(태조 5) 한성부윤으로 계품사(計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표전문 작성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하여 홍무제의 오해를 풀어, 명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성고합니다.
그러나 표전문 문제로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계림부윤(경주)으로 좌천되었으며, 이후 정도전파에게 탄핵까지 받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하륜의 이방원을 도와 정도전을 제거에 앞장섭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하륜은 고려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인물로 태종실록,하륜 졸기에 1388년 최영이 요동을 공격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다고 기록하고있으며 고려사절요, 동국통감에서는 하륜이 이인임의 인척이었다는 이유로 최영에 의해 유배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