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상들은 전신목욕을 강가에 가서 하는 방법 밖에 없었나요?
지금처럼 상수도 시설과 배관 시스템이 없었던 과거에는 전신 목욕을 하려면 강가나 냇가 등 실제 몸을 다 넣을 수 있는 장소에 가지 않으면 할 수 없었을까요?
그럼 남녀 할 것 없이 의류를 모두 벗고 하려면 누군가는 망을 봐주고 다른 사람이 없는지를 살핀 뒤에 목욕을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노천에서 목욕하기도 하였지만 실내에서도 목욕 시설이 있었습니다. 신라에서는 일찍이 목욕을 미용 혹은 청결, 의식 수단으로 중시하여 자주하였습니다. 그 결과 절에는 대형 공중 목욕탕이 설치되고, 가정에서도 목욕시설이 마련되었습니다.
고려도 마찬가지로 대가에서는 목욕시설인 정방(淨房)을 집안에 설치하였으며, 조두를 만들어 저장하고, 특히 혼례를 앞둔 규수주3는 살갗을 희게 하기 위한 목욕을 하였습니다. 난탕을 비롯하여 인삼잎을 달인 삼탕(蔘湯), 창포잎을 삶은 창포탕, 복숭아잎탕, 마늘탕, 쌀겨탕을 이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는 노출을 꺼리는 생활관습으로 인하여 벌거숭이 상태로 목욕하지 않고, 옷을 입은 채로 신체의 부분 부분을 씻어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대형의 욕조가 불필요해진 대신 대형 함지박과 대야주4가 다수 제조되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는 질병치료를 위한 온천 목욕 및 한증도 성행했어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가에서는 목욕물을 받아서 온 몸을 씻을 수 있는 욕조와 같은 것을 갖춰서 전신을 씻을 수 있었으나 일반 서민들은 강가나 냇가에서 저녁에 몸을 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낮에도 몸을 씻기도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서시대 양반이나 왕족들이 전신 욕을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큰 나무 욕조에 물을 채우고 목욕을 하고는 했습니다. 강가나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는 경우에는 주로 여름 철이나 봄철에만 전신욕을 하고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