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고종의 친정으로 자신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통상개화론이 확산되어 갔습니다. 박규수, 오경석 등의 통상 개화 사상은 개항과 개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것도 실패의 원인입니다.
또한 서구 열강의 압박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조선의 군사력이 견고하지 안았습니다. 특히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운효호 사건을 계기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또한 청, 일본 등 주변국도 개항, 근대화의 압력에 굴복한 상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