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대비해서 조선시대때는 왜 무보다는 문을 중요시 했나요?

2023. 06. 01. 13:24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해보면, 항상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많이 받아 올정도로 국력이 약한것 같은데요

이처럼 왜 무를 무시하고 문을 더 중요시 하는 문화가 생긴건가요?


총 4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때 무(武)를 무시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는데

유교에서는 선비,농민,장인(기술자),노비

사회에서의 귀천을 이런 순으로 쳤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한 것이

유교의 도리 특히 충忠과 효孝를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과거 시험의 내용은

유교 덕목에 대한 것이었죠.

조선 초기에는 누구나 과거 급제하면 양반이었지만

선비 빼고 일하느라 바쁜데, 누가 과거 준비하며

공부할 돈도 없죠. 그래서 양반이 계급화돼었고,

그렇게 책상물림만 한 선비들만 모인 정치판에서

실질적인 문제(특히 국방,과학발전)가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죠. 또 왕권 강화를 위해 사병을 없앴으니

일본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유교 공부한 선비 중에서 융통성 없이 유교 덕목만

머리에 박힌 선비만 있진 않았어요.

조선 건국 시 이성계를 도운 세력(훈구 세력)은 실질적인 문제에선

융통성 있는 수용을 보였죠.

허나 후에 조선 건국 시 지방에서 글공부하던 사림이 정치판으로

올라왔고, 훈구파와 정쟁을 벌였죠.

훈구와 사림은 둘 다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정쟁이 안정되었다면, 명나라의 선진 문물을 잘 받아들이면서

자국의 발전과 국권을 수호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훈구파가 거의 사라지고 사림이 장악했죠.

그 후, 각자의 학문적 성향, 출신지에 따라 붕당을 이루었습니다.

초기 붕당은 서로 정치적으로 토론하며 정책을 보완해가는

국가에 긍정적인 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직은 한정된 상태에서 관료가 지나치게 늘면서,

서로 밥그릇 챙기느라 붕당이 변질되고 당파 싸움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보다는 자신의 붕당을 챙기느라 국무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이 전국을 통합해서 틈을 찌른 것입니다.

그래서 한심하게 도망쳤죠. 7년 동안 열심히 싸워 결국 이겼지만요.

문은 쓸데없고, 무는 필요하다고 하셨습니까?

어느 쪽도 함부로 할 것이 못 됩니다.

일본이 이긴 것은 무를 숭상해서가 아니라

해상무역을 중시하여 선진 문물을 익히는 데

소홀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대에서 동양 윤리에 대해 관심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까?

현대 사회에서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님이 필요하다고 하는 무에서 중시되는 것인

힘의 원리,실리만 중시하고 그 외에는 무시하기 때문이죠.

문무 어느 한 쪽을 쓸데없다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입니다.

2023. 06. 01. 14:24
답변 신고

이 답변은 콘텐츠 관리 정책 위반으로 비공개되었습니다.

신고사유 :
    답변 삭제

    이 답변은 작성자의 요청 또는 모니터링으로 삭제되었어요.

    이 답변은 비공개되어 본인만 확인할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조선시대 자체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삼아 세워진 국가였으므로 아무래도 무보다는 문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조선시대의 문화가 고스란히 현대 사회로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사관학교 vs 서울대면 사회적으로 서울대가 더 선호되는 것이 이러한 풍조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

    2023. 06. 01. 17:53
    답변 신고

    이 답변은 콘텐츠 관리 정책 위반으로 비공개되었습니다.

    신고사유 :
      답변 삭제

      이 답변은 작성자의 요청 또는 모니터링으로 삭제되었어요.

      이 답변은 비공개되어 본인만 확인할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에는 별도로 문반과 무반을 따로 구분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경당이나 신라화랑의 예만 봐도 무술도 익혀야 했고 글도 같이 읽혀야 했습니다. 즉, 삼국시대에는 관료제가 덜 분화 된 사회 였고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문무반 제가 비교적 정착화 된 시기 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무반을 업신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고려 시대 만큼 무반을 업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바로 함경도 출신의 무관이였기 때문 이기도 하고 고려의 무신 정권의 상황을 조선의 관리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2023. 06. 01. 14:04
      답변 신고

      이 답변은 콘텐츠 관리 정책 위반으로 비공개되었습니다.

      신고사유 :
        답변 삭제

        이 답변은 작성자의 요청 또는 모니터링으로 삭제되었어요.

        이 답변은 비공개되어 본인만 확인할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말배추1님.

        조선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시대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이 국가 이념으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기였습니다. 유교는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 그리고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중요시하는 철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와 체제는 유교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문'(학문과 교육)이 '무'(무력과 전쟁)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력을 통한 침략이나 전쟁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가치관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 사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무력을 무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도 국방과 군사를 중요시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체적인 사회 체제와 가치관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불과했을 뿐, 그 근간은 여전히 유교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2023. 06. 01. 13:38
        답변 신고

        이 답변은 콘텐츠 관리 정책 위반으로 비공개되었습니다.

        신고사유 :
          답변 삭제

          이 답변은 작성자의 요청 또는 모니터링으로 삭제되었어요.

          이 답변은 비공개되어 본인만 확인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