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중앙정부가 있다 하더라도 호족들을 무시할 수 없던던 국가입니다. 그 호족들의 군사력 또한 무시하지 못합니다. 전쟁이 나게 되면 여러 호족들의 군사들이 한 곳에 뭉쳐 관군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가 되서 싸웠습니다.
보통 그렇게 뭉치면 약 15만 이상의 병력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남쪽의 왜구나 북쪽의 북방민족과 여러 차례 전투를 했던 집단이었기 때문에 전투력도 어느정도 신뢰가 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반면 조선은 태종 이후에 완전히 사병(개인의 무장 집단)이 철폐됐기 때문에 중앙군으로 편입되거나 일반 백성들처럼 살아왔죠. 다시 말해서 정규 군사 집단이 관군 밖에 없었습니다. 왜구가 들어오면 지방군사들이 집결할 때 정부에서 총 지휘관인 장수를 내려보내는데.. 조선의 군사력도 초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강했습니다. 초기의 명나라가 과거 수, 당나라를 막아낸 우리 민족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조선의 군사력을 높게 평가했었으며, 4군 6진 개척이나 여진족을 박멸하는 모습을 상당히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에도 조선군이 패배하는 소식을 전혀 믿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조선은 초기를 지나면서 군의 부폐가 상당했고요..
대립제가 성행하면서 조선에 군이라고 부를 만한 군대는 모조리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조선군 뿐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남쪽의 조선군은 작살난 반면, 북쪽에 위치한 여진족과의 실전경험이 있던 조선군은 왜군과 싸우면서도 반격도 했었습니다. 제 2군 가토의 8천 명의 병력을 포위 모조리 전멸시킨 것도 해정창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한 조선의 기병대가 재전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남쪽이야 실전경험이 없는 조선군이 대부분이었다면 북쪽은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