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세계사의 나오는 아비뇽 유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요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아비뇽의 유수란 말이 나오는데 아비뇽은 지명입니까 사람 이름입니까. 아비뇽의 교수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교환권이 쇠퇴하고 황제권이 강화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대립, 그는 삼부회를 소집하여 지지를 받고 교황에게 도전하여 승리합니다. 교황은 패배 직후 사망했고 그 뒤 프랑스 인이 계승하였으며 교황청을 아비뇽에 두었습니다.

      교황들이 아비뇽에 거주한 약 70년 프랑스 왕의 영향 속에 프랑스에 의존하는 형편이었고 그 뒤 로마와 아비뇽에 두명의 교황이 분립하는 교회의 대분열로 이어지며 교황권은 더욱 쇠약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비뇽은 프랑스 지명 입니다. 14세기 당시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해 있던 서방교회의 교황청을 신성 로마 제국이 강제적으로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르게 한 사건을 말하는데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쓰인 표현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교황권이 쇠퇴하고 황제권이 강화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대립하였다. 그는 삼부회를 소집하여 지지를 받고, 교황에게 도전하여 승리하였다. 교황은 패배 직후 사망하였고, 그 뒤 프랑스 인이 계승하였으며, 교황청을 아비뇽에 두었다. 교황들이 아비뇽에 거주한 약 70년 간을 교황의 아비뇽 유수(1309~1377)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교황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아비뇽의 교황들은 프랑스 왕의 영향 속에서 프랑스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그 뒤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분립하는 교회의 대분열(1378~1417)로 이어지면서 교황권을 더욱 쇠약해졌다.

      출처 :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