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읻 되었지만 경제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군정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했으며, 이는 물가 상승을 촉진해 서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미군정은 자본주의 시장주의 원리에 입각하여 미곡 자유화를 시행했으나 오히려 쌀값 폭등을 초래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한 미곡수집령과 배급제는 혼란을 더욱 확산시켰습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 시민 1000여명이 시청 앞에서 쌀을 달라는 시위가 일어났으며, 경찰의 발포하여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10월 대구 항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