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신각 동종은 1468년(세조 14)에 주조되어 정릉사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후 원각사로 옮겨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절이 불타 종루로 옮겨졌고 고종 때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어 보신각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합니다. 조선초기인 태조5년(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과 4소문(혜화문, 소덕문, 광희문, 창의문)을 일제히 여닫기 위해 종을 쳐왔는데 새벽에 치는 종을 파루라고 했으며, 저녁종을 인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보신각이란 명칭은 고종32년(1895년)부터 불려 졌으며, 흔히 종루로 불렸고 벽에 타종하는 파루는 오경삼점인 오전 4시경에 33번을 타종하여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8문을 열어 그 날의 활동을 시작했다고합니다. 33번의 타종은 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33天으로 분신하는데, 이에 따라 33번을 타종하게 되었다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