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옥저에서 있었던 민며느리제는 왜 만들어진 것인가요?
과거 옥저라는 나라에서는 여자의 나이가 10살이 되면 며느리로 삼을 집에서 데려가서 성인이 될때까지 키운다음 친정으로 돌려보낸 다음 다시 맞이하여 혼인을 치렀던 제도라고 들었는데요. 뭔가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여성이 무슨 재산인것처럼 취급하는 거 같아 굉장히 불편한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가 생겨난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혼수비용이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시행해 상대 집에서 일한 것을 혼수비용의 일부로 삼았습니다.
넉넉한 집안에서는 늘 일손이 부족하므로 가난한 집 여자아이를 민며느리로 데려와 농사와 가사를 돕게 하고 집안 사람과 결혼시키는 것, 가난한 집안에서도 부잣집에 민며느리를 보내면 입을 덜고, 키우고 시집보낼 걱정도 덜고, 가난한 집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부잣집에 민며느리로 일하는게 나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릴사위제라는 서옥제는 사위로 삼을 남자를 여자의 집에서 별도로 집을 지어서 머물게 한 것이고,
민며느리제는 며느리로 삼을 여자를 남자의 집에서 일찍부터 살게 한 것입니다.
두 제도 모두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편한 제도 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사실 매매혼 과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의 노동력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가축들보다 사람의 노동력의 가장 컸던 시대 였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결혼하여 남편 집으로 가면 여자 집에서는 딸과 딸이 낳은 자식의 노동력까지 잃게 되기 때문에 남자가 지참금을 지불하여 그 상실된 노동력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시다시피 이러한 지참금을 지불하는 매매혼은 외국에도 많이 있고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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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에 함경도 지역에 있던 나라인 옥저에서는 당장 혼인 비용을 마련할 수 없거나 혼인 상대자를 찾지 못할 때, 고아나 어린 소녀를 데려다 키워 혼인하는 풍속이 있었다. 주로 먹고살기 힘들었던 빈민층에서 유행했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는 “동옥저에서는 10세 소녀를 데려다 키워 민며느리로 삼고, 다 크면 일단 집으로 돌려보낸 뒤 그쪽에서 요구하는 비용을 치르고 다시 데려와 혼인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민며느리제와는 반대로 남자가 여자의 집에 사는 경우는 ‘데릴사위제’ 또는 ‘예서제’라고 한다. 보통은 딸만 있는 집안에서 남자의 노동력이 필요할 때 데릴사위를 들였다.
출처 : 한국사 사전1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노동력 확보
옥저는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어린 며느리를 데려와 키우면, 그동안에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의 안정성 확보
옛날에는 결혼이 일생에 한 번 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결혼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민며느리제는 신랑 집에서 어린 며느리를 키우면서 신랑과 며느리의 관계를 깊게 쌓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문의 유지
옥저는 가부장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가문의 유지가 중요했습니다. 민며느리제는 남자가 죽은 경우, 며느리가 가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옥저에서 민며느리제가 생겨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편, 민며느리제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잔인한 풍습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면서, 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다면 추천 좋아요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