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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싶은뱀128
날고싶은뱀12823.01.30

조선시대에 불교는 왜 탄압을 받았나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에는 귀족과 왕족사이에서도 지배적인

종교였던 불교가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부터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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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조선시대 자체가 숭유억불의 시대였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 사회였고 불교는 양반 사대부층의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불교의 종교적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고 왕실이나 민간에서 유지되었다.

    윤회나 인과응보 등 불교의 사유 세계는 전통적 심성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내세의 명복을 빌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관념과 현실의 재액을 피하고 복을 추구하며 후세의 번성을 바라는 신앙 형태가 관습화되었다. 조선 전기에 억불(抑佛) 정책이 시행되어 공식적인 폐불(廢佛)의 단계에 이르렀고 그와 함께 유교적 제의(祭儀)와 사후 관념이 불교를 대체하였지만, 조선 말까지 불교의 종교성과 내세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는 불교의 생명력이 이어져 고려 이래의 전통을 계승하여 토착화의 길을 밟아 왔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불교 정책은 억불로 요약된다. 성리학을 기치에 내건 조선 정부와 유학자들은 불교를 이단으로 취급하였고 그 억제만이 정도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었다. 국가 정책상으로도 연산군, 중종에 이르러 공식적 폐불이 단행되었다. 이는 불교의 존재를 부정하고 승려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었고, 공인되지 못한 불교는 법제의 밖에서 스스로를 보전하여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외부적 강제에 의해 쇠퇴 일로를 치달은 끝에 결국 파국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명종대에 일시적으로 양종(兩宗)과 승과(僧科)가 재개되었고, 이를 계기로 내실을 다진 불교계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승군(義僧軍)을 일으켜 국가의 위기 극복에 큰 공적을 쌓았다. 이후 불교는 사회적 효용성을 인정받으면서 사찰을 중건하고 교학과 수행에 힘썼으며 민간 신앙을 포섭하여 폭넓은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11_0060_0010_0010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정치 권력자들이 불교를 경시하고 타악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중요한 종교 중 하나였지만, 국가의 정책은 신도 중심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정치 권력자들은 불교를 혁파하고 그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불교에 대한 탄압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숭불책을 바탕으로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서 팔관회와 같은 불교행사가 많고 불교가 일상생활과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으나 조선은 건국초기부터 성리학에 바탕을 둔 숭유억불책을 써서 불교를 탄압하고 성리학에 바탕을 둔 국가의 이념과 생활의 근간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왕과 귀족들 사이에만 유행하였던 일반 백성들은 접하기 어려웠고 탄압받던 불교의 절들은 산속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민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불교가 유입된 이후 조선 직전 국가인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스님 신분이 국가의 권력을 노리거나 권력을 잡는 등 타락하고 국고를 고갈시키는 등의 일도 있었고, 승려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기도 했지요.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조선은 고려 때의 이런 폐단을 막고자 하였고, 불교 종사자들의 재산과 토지를 축소하고자 신진사대부들이 생각했습니다.

    또 조선이 명나라를 사대하는 주의를 가지고 있어 유교를 숭배하게 되었지요.

    숭유억불은 태종 재위 때 본격 시작되었지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교는 고려말 부터 타락이 심해져서 일반 백성들로부터도 외면을 벋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새로운 조선이라는 나를 이끄러갈 새로운 정신적인 지주로서 유교룰 채택 했기에 삼국시대부터 자리잡은 불교는 그 자리를 내주고 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