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가 정말 혼자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것이 맞나요?
한반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 것이지 일개 한사람이 혼자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해안선의 모습은 물론이고 산들도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대략적인 모습만 확인이 될텐데요. 이 모든걸 혼자서 할 수 있을까요?
정말 혼자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것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하며 만들었다는 것은 최남선이 만든 허구 이야기이며, 기록에 따르면 관리들의 허가를 받아 비변사 등이 소장하고 있는 행정용지도를 취합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많이 참고했다고 합니다.
당시 대지도로는 개념도가 우세했고, 행정용, 군사용으로 쓰이던 군현 지도는 상세도가 우세였는데 김정호는 이러한 지도들을 엮어 하나의 상세한 대지도를 만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10월 8일과 9일 2번에 걸친 『동아일보』의 「고산자를 회(懷)함」이란 글에서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통해 민족적 우수성을 되짚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전국답사설 · 백두산등정설 · 판목몰수설이 나타났는데, 그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김정호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측량하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1800년(순조 즉위) 초반에 에도막부[江戶幕府]의 도움을 받아 전국을 답사하면서 일본을 측량하여 지도를 제작한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내세우려 하였습니다.
둘째, 근대식 측량지도 못지않은 정확한 지도가 조선에도 『대동여지도』란 이름으로 제작되었음을 부각시켜 민족적 우수함을 설명함으로써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 백성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셋째, 관에 의한 판목몰수설을 통해 조선의 멸망을 백성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집권층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려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에 김정호의 전기가 처음으로 수록되었는데, 전국답사설 · 백두산등정설 · 판목몰수설은 『동아일보』의 「고산자를 회함」에서 그대로 따왔습니다.
다만 첫째,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우수함을 부각시키려 비교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노 다다타카와 그가 제작한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하였습니다. 둘째, 김정호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조선의 지도가 정확성에서 엉터리라는 이야기를 삽입시킴으로써 김정호 이전 조선의 지도 제작 능력을 폄하시켰습니다. 셋째, 흥선대원군이란 구체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개항기 조선 정부의 무능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편입된 것을 정당화시키려 하였습니다. 넷째, 조선 정부의 무능력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김정호 부녀의 옥사설을 추가하였습니다.
판목소각설은 『동아일보』의 기사나 『조선어독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로, 후대의 다른 자료에서 첨가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김정호의 전기는 1980년대까지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1990년대부터 전국답사설 · 백두산등정설 · 옥사설 · 판목소각설이 모두 잘못된 이야기라는 새로운 연구가 나타나 점점 교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관한 네 가지 설은 첫째, 전통시대에 필요한 거리 정보의 종류와 그것에 기초를 둔 지도의 제작 과정을 모르는 비전문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둘째, 김정호 이전에도 상당한 수준에 있었던 조선의 지도와 지리지 제작의 변천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셋째, 김정호가 국토정보의 체계적 이해를 위해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지도와 지리지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넷째, 김정호가 지도의 정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맞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 이용의 편리였다는 점을 몰랐기 때문에 만들어진 잘못된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