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의병 이후 의병 운동은 이전 1895년에 일어난 을미의병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우선 을미의병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일어났다면, 을사의병은 을사늑약 체결과 국권 피탈에 저항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을미의병이 개화정책에 반발하는 위정척사적 성격이 농후하다면, 을사의병은 국권 수호 운동의 성격이 강합니다.
또한 주도 세력도 을미의병은 유생들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에 대해 충의를 거스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대부분 해산했습니다. 하지만 을사의병은 유생의병장 이외에도 신돌석 같은 평민의병장의 등장으로 유교적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