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은 대체로 신분질서와 상하관계를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역할과 명분을 지켜 사회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질서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즉, 성리학은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언어를 제공했고, 양반 지배층은 그 언어를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 사회적 특권을 유지하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이러한 성리학적 질서관에 따라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향리가 과거(문과) 응시에 제한을 둔 것은 성리학적 명분 질서와 양반 관료층의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