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의 원수라는 이흠례는 어떤 인물인가요?
잔학무도한 도적 임꺽정이 이흠례라는 인물을 원수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이흠례는 어떤 인물이길래 임꺽정과 원수지간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흠례는 11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진천 송씨 슬하에서 형 3명, 동생 1명과 함께 자랐으며 이흠례부터는 좁은 의미에서 왕의 가까운 친족으로서 대우도 받고 통제도 받는 왕족이 아니었는데, 이때문에 오히려 그는 명예직이 아닌 실직에 나설수있었는데 왕족은 벼슬을 할수없었기 때문입니다. 1549년 무과에 급제, 이후 선전관과 전라도 판관을 역임, 나주 판관으로 있던 1555년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쳐들어온 왜구들을 물리치는 공을 세우고 방어사를 지냈습니다.
이후 황해도 신계 현령으로 부임, 재직중이던 1557년 오연석 등 도적들이 황해도 일대를 휩쓸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자 주민들과 협조해 이들을 처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토벌한 도적은 황해도와 경기도, 한성 일대까지 엄청난 세를 불리며 활약한 임꺽정이 두목이었던 조직이었고 조정에서는 이들을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국적, 반란군으로 규정할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1560년 명종은 일전에 도적들을 토벌한 경험이 있는 이흠례를 황해도 봉산 군수로 임명, 임꺽정 무리들을 소탕하도록했습니다.
이흠례는 용감히 싸웠고, 임꺽정의 부하들을 많이 사로잡았으나 임꺽정은 이흠례가 신계현령으로 있을 떄 자신들에게 피해를 많이 입힌 일을 생각해 후환을 없애기 위해 이흠례를 죽일 계획을 세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임꺽정의 부하 서림이 이를 관에 밀고하여 계획은 실패, 관군이 앞잡이가 된 서림에 의해 임꺽정 패는 대부분 체포, 임꺽정은 쫖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때 살해당할 뻔 한 이흠례는 선전관 정수익, 평산 부사 장효범 등과 함께 임꺽정 일파를 추격, 그들의 함정에 걸려 실패하자 사헌부에서는 이흠례를 비롯한 토벌군에 참여한 관료들을 처벌하라고 명종에게 간했으나 명종은 이흠례가 그동안 세운 공이 있다며 윤허하지 않았습니다
몇달 뒤 품계가 높아져 통정대부가 되었으나 사헌부에서 도적 토벌에 실패한 전적을 문제 삼아 이흠례의 품계를 내리라고 명종에게 요청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해도 신계 현령으로부임으로 있던 1557년(명종 12년)에는 황해도와
경기도, 심지어 한성 일대까지 엄청난
세를 불리며 활약한 임꺽정을 두목으로두고있는 도적떼를 처단하려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523년(중종 17년)에 태어났다. 상술했듯 효령대군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효령대군의 4남 낙안군 이녕이고, 할아버지는 낙안군의 독자 청원정 이목이며, 아버지는 청원정의 3남 금양부정 이경입니다. 왕의 4대손까지 왕족으로 대우하는 법에 따라, 왕족으로서의 대우는 태종의 현손인 그의 아버지까지 받았고 이흠례부터는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황해도 신계 현령으로 부임했고 재직 중이던 1557년(명종 12년)에는 오연석 등 도적들이 황해도 일대를 휩쓸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자 주민들과 협조하여 이들을 처단했습니다.
그런데 저때 토벌한 도적들은 그냥 도적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속한 도적떼들은 황해도와 경기도, 심지어 한성 일대까지 엄청난 세를 불리며 활약했었습니다. 그들의 두목은 바로 그 유명한 임꺽정이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국적(國賊), 그러니까 반란군으로 규정할 정도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560년(명종 15년)에 명종은 일전에 도적들을 토벌한 경험이 있는 이흠례를 황해도 봉산 군수로 임명하여 임꺽정 무리들을 소탕하게 했습니다.안녕하세요.
이흠례와 임꺽정은 조선시대의 유명한 도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도둑이었지만 임꺽정이 부자들을 재물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었던 반면 이흠례는 부자들과 결탁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는 나쁜 도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흠례와 임꺽정은 대립하게 되었고 여러 번 싸움을 벌리는 원수지간이었다고 합니다.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