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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향고래의 노래
기쁜향고래의 노래24.02.16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은 어떤 이유로 세자 자리를 세째 아들인 충녕대군에게 빼앗겼나요?

조선 초 왕자의 난을 통해 정권을 잡은 태종은 장자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옹립했다가 폐하고 세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세워 결국 세종대왕이 됩니다.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은 어떤 이유로 세자 자리를 세째 아들인 충녕대군에게 빼앗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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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녕대군은 학업에 소홀했으며, 사냥과 음주 등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또한, 방자한 행동으로 인해 신하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태종은 양녕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을 경우, 정치적 불안이 초래될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녕대군은 어리라는 여성과 간통하는 사건을 일으켜 왕가의 여론이 악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녕대군은 폐세자가 되어 대군으로 격하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양녕대군은 1418년에 폐위되어 경기도 광주로 추방됩니다. 황희 등 원로대신들 중 일부는 세자 폐위를 반대했지만 오히려 이들은 태종에 의해 유배를 당하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왕세자의 신분에 있었던 양녕대군이 폐위된 까닭은 그것은 바로 양녕대군이 태종과 성격도 맞지 않았고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양녕은 호방하고 풍류를 즐기는 스타일로 글공부에 관심은 없고 사냥이나 노는데 관심이 많았기 때문 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1, 2차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권력다툼을 경계하여 안녕대군을 일찍부터 왕세자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궁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폐위되고 그 뒤 전국을 누비며 풍류를 즐기고 시와 서에 능하였습니다. 효령대군은 불가에 몸을 의탁하였으니 셋째인 충녕대군(세종)이 왕세자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당시는 조선의 극 초기 였기 때문에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엄격한 도덕주의 조선 같은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우 활발한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죠

    그리고 양녕과 충녕 사이의 차이가 너무 심했습니다

    양녕은 술과 사냥, 여자 등 당대의 노는 것이라면 눈이 뒤집혀 온갖 사고치고 다녔으며

    말년에는 며느리도 건드렸다는 인간 쓰레기 였습니다

    그래서 장자계승의 원칙을 어겨서 생기는 왕권손실보다

    양녕이 왕이됬을대의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된 것이죠.

    다른 후계자가 없다면 또 모를까, 한번 잡은 책은 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읽었다는 충녕이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태종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빠 친구였던 정몽주를 방해된단 이유로 대낮에 살해하는 과감성과

    형을 이용해서 최대한 정상적으로 왕위를 승계받는 침착함을 겸비한 태종이니

    마지막 까지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충녕을 선택하는 성공적 선구안을 발휘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