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 감행하고..국군은 서울탈환하고.

38선 돌파하여 북진해서..평양수복하고.. 청진에 도달해 이당시..통일할수있었나요?통일 눈앞에뒀지만 .. 중공군의개입으로 상황이달라졋다는데..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한국군과 유엔군이 청진까지 갔을 때 중공군의 개입 징후가 있었고 이를 간파했던 맥아더는 미국 정부에 만주지역에 핵폭탄 투하를 건의합니다. 맥아더의 의견대로 만주지역에 핵폭탄을 투하했다면 우리나라는 통일 되었겠지요. 맥아더의 만주 지역 핵폭탄 투하는 미국 정부 특히 아이젠하워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현재의 휴전선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사실상 승전하지 못한 맥아더는 퇴역 당했고 만주 지역 핵폭탄 투하를 반대했던 아이젠하워는 미군 최고 사령관을 지낸 후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성들여서 답변드는 사람입니다.

    당시 통일이 가능했던 기회가 있었지만, 맥아더의 판단 실수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맥아더는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했거든요.

    특히 재미있는 건, 마오쩌둥이 김일성에게 미군의 인천 상륙 가능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김일성이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죠.

    그런데 맥아더도 비슷한 실수를 했어요. 중공군이 이미 30만 명의 병력을 만주에 배치했다는 정보가 있었는데도,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 개입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했거든요. 게다가 유엔군을 동서로 나누어 진격시키는 실수도 저질렀어요.

    만약 서울 탈환 직후 맥아더가 이승만 대통령의 조언대로 신속하게 38선을 넘어 북진했다면, 중공군이 개입하기 전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네요.

    답변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의 서울 탈환, 38선 돌파로 한국 전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지만, 통일은 당시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상황이 급변했고, 그들의 대규모 참전은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을 저지하면서 전선을 다시 한반도의 중부로 밀어넣었습니다. 결국 전쟁은 휴전으로 끝나게 되었고,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