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채가 영조 시절에 정치때문에 만들어진 것인가요?
탕평채는 궁중요리이지만 생각보다 만들기 쉬워서 가정에서도 간혹 해먹곤 합니다. 그런데 이 탕평채가 영조 시절에 붕당정치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던데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탕평채(蕩平菜) 또는 묵청포(-淸泡), 청포묵무침은 한국의 궁중요리이다.[1][2] 채 썬 청포묵, 쇠고기, 녹두싹, 미나리, 물쑥 등을 넓은 그릇에 담고, 간장, 참기름, 식초로 고루 버무린 후, 황백지단, 김, 고추를 가늘게 채 썰어 고명으로 얹어낸 묵무침이다. 탕평채는 대개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먹는다.
녹두녹말로 만든 묵과 볶은 쇠고기, 채소류 등을 함께 버무린 음식으로서 봄철의 별미로 감촉이 매끄럽고 맛이 새콤해서 식욕을 돋운다.[3]
역사
1849년에 편찬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탕평채는 그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제21대 왕인 영조가 즉위했을 당시는 예전부터 지속되어 온 붕당간의 대립이 치열한 시기였다. 영조는 각 붕당 사이의 첨예한 대립과 정쟁을 해소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평등하게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탕평책의 경륜을 펼치는 자리에서 등장한 음식이 탕평채이다. 탕평채에 들어가는 재료의 색은 각 붕당을 상징했는데,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을, 쇠고기의 붉은색은 남인을,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각각 상징했다. 각각 다른 색깔과 향의 재료들이 서로 섞여 조화로운 맛을 이뤄내는 탕평채는 영조의 탕평책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출처: 위키백과 탕평채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제로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조선의 공식문서에 탕평채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탕평채는 1700년대 말의 문헌인 「경도잡지」(1700년대 말)와 「고사십이집」(1783년)에 소개되었으며 그 이전의 문헌에서는 탕평채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색인의 탕평을 기대하여 녹두묵과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음식을 탕평채라 한다.'고 기록한건 「명물기략」으로 1870년경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