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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9

최초의 비행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여?

안녕하세요

최초의 비행기는 라이트형제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 양산하여 사람을 태우는 비행기는 누가 어디서 처음 양산하였나요?

비행기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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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 최초의 여객기는 1930년대 러시아의 ‘볼쇼이 발티스티’라는 비행기로 승무원 2명과 승객 7명이 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비행기를 좀 더 개량한 ‘르 그랑(Le grand)’이라는 비행기가 생산되었는데, 이 비행기에는 객실 의자, 소파, 화장실, 심지어 난방 장치까지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비행기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1952년 영국에서 좀 더 발전된 ‘도니어 코멧(Donier comet)’이라는 세계 최초의 단엽 여객기가 나왔는데 이 비행기는 전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객기 - 지구촌 시외버스 (대단한 하늘여행, 2011. 4. 8., 윤경철)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5.29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최초로 실질적인 비행에 성공한 비행기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형은 윌버, 동생은 오빌)가 만든 플라이어호로, 1903년 12월 17일 미국 키티호크에서 오빌이 조종하여 12초 동안에 36m를 비행하였다. 그러나 인류는 이보다 앞서 여러 형태의 항공기로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하였다. 1783년 10월 프랑스 P.로지에는 J.M.몽골피에가 만든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한 기구(氣球)를 타고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비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추진장치(기관과 프로펠러)가 비행선에 장착되었다. 1891년 독일의 O.릴리엔탈은 날개의 양력을 이용하여 비행하는 글라이더(glider)를 최초로 제작하여 비행에 성공하였다. 여러 사람이 글라이더의 경험에서 얻은 항공역학적 지식과, 19세기 말에 실용화된 가솔린 기관의 특성을 조합하여 만든 비행기로 비행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후 라이트 형제에 의해 마침내 비행의 꿈은 실현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 비행기의 세계기록은 시속 204km, 항속거리 1,021km, 고도 6,120m까지밖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4년간에 걸친 전쟁으로부터의 가혹한 시련으로 빠르게 발달하여, 종전 직후인 1919년 세계 각국에서 비행기에 의한 여객수송의 정기항로가 개설될 만큼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대전 후 군용기의 잉여분은 민간에 불하되었는데, 민간기와 군용기로 각국에서 속도비행과 장거리비행을 시도하여 비행기의 성능과 속도는 날로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1927년 5월 20~21일 미국의 C.A.린드버그는 ‘Spirit of St.Louis’를 타고 뉴욕과 파리 사이의 대서양횡단 무착륙비행(거리 5,809km, 비행시간 33시간 50분)에 성공하였고, 미개척 항공로의 기록비행으로 대양횡단·북극횡단·대륙간비행·세계일주비행이 성행하였다.

    이 결과 항공수송로는 크게 개발·연장되었다. 항공기술은 20년대에 실용화되면서 성능향상이 큰 과제가 되어, 이에 대한 연구와 시험비행으로 1930~1935년 비약적인 발전을 하여 근대적 기반을 구축하였는데, 주요원인을 들면, ① 플랩의 실용화:고양력장치로서 이착륙거리를 단축시켜 성능을 향상시키고, 비행기 운영에 크게 이득을 주었다. ② 접개식 다리의 활용:비행 중에는 날개나 동체 속에 집어넣고 공기저항을 감소시켜 비행성능을 향상시켰다. ③ 가변 피치프로펠러의 실용화:비행 중 피치를 바꾸어 어떤 비행상태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하여 비행효율을 향상시켰다. ④ 과급기(過給器)의 개선:고공(高空)에서는 공기가 희박하여 기관의 출력이 저하되므로 이를 방지하여 기관의 출력을 증가시켰다. ⑤ 세미모노코크(semi-monocoque)구조의 개발:강력하고도 가벼운 두랄루민 박판을 사용하여 금속비행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장치와 구조가 실용화되고, 이것들을 종합하여 근대적인 저익단엽형식(低翼單葉型式)이 완성됨으로써 비행기의 표준화가 이루어졌다. 1936~1945년에 이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비행기의 성능 및 실용성은 완벽해졌는데, 특히 전후에 급속히 실용화된 제트기와 각종 전자장치를 이용한 항법장치의 등장은 교통기관으로서의 비행기를 지상이나 해상의 교통기관과 대등한 지위를 확보하는 데 공헌하였다.

    세계최초로 비행한 제트기는 1939년 독일의 하인켈 HE-178기이며, 대전 말기인 1943~1944년에는 독일이나 영국의 제트기가 전선에 투입되었다. 제트수송기가 처음으로 정기항공에 취항한 것은 1952년 영국의 DH 코멧기이지만, 수송기의 본격적인 제트화는 1958년에 비롯되었다. 프로펠러기는 음속에 가까워지면 효율이 급격히 저하되므로 시속 800km 이상의 속도는 무리라고 생각되었으나 제트기에는 그런 제한이 없으며, 군용기인 록히드 YF-12A는 이미 시속 3,547km(마하 3.3)의 속도기록을 수립하였다(마하수는 음속에 대한 배수로서 마하 1.0은 해면에서 시속 1,225km, 성층권에서 시속 1,060km이다). 상용수송기의 속도는 일반적으로 마하 0.85 정도이지만, 1976년 이래 초음속수송기(supersonic transport:SST) 콩코드는 음속 2배의 속도로 정기노선에 취항하였다. 1970년대 강력한 제트기관의 출현으로 제트수송기는 대형화되어 500여명의 승객 또는 100t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점보제트의 수송시대가 전개되었다. 1989년에는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F-117A 전투공격기와 B-2 폭격기가 미국 록히드사와 노드롭사에 의해 개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