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은 청나라의 벽돌, 수레, 선진 기술 등 배울 점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당시 조선 사회의 양반들은 문제점들을 실랄 하게 지적 하게 됩니다. 양반들은 농사나 상업과 같은 실생활과 같은 일들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글공부만 내세우는 무능함을 지적 하게 되고 모든 양반들을 비판 한 것은 아니고 백성을 구제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가짜 양반들을 청산하고, 지식과 도덕성 갖춘 자격 있는 진정한 선비의 역할을 강조한 애정 섞인 비판의식이 그의 작품에 들어 잇는 것 입니다.
실학자인 박지원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심해진 양반층의 무능함, 허례허식 그리고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조선의 발전을 막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신도 양반 신분이었지만, 신분제적 기득권에 안주하기보다 실용성을 중시했습니다. 양반의 신분을 사고 파는 현실을 소재로 지배계층의 비생산성과 위선적 삶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