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분은 175년만에 소집된 삼부에서 표결 방식을 놓고 귀족, 성직자들과 대립하다 해산을 거부하며 국민의회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회의장을 폐쇄했지만, 대표들은 근처 테니스코트로 이동해 “헌법을 만들 때까지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제 3신분이 단순히 삼부회의 한 신분이 아니라 국민 저체의 대표라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즉 왕이 구각 주권을 독점한다는 절대 왕정의 원칙에 도전하고, 국민과 대표가 헌법을 만들 수 있다는 원칙을 내세운 것입니다.
결국 국민의회는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으로 나아갔으며, 혁명 정신을 담은 1791년 헌법을 제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