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통해 명나라와 후금(청) 사이에 갈등을 잘 조절해 나갔으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등극한 인조와 신하들은 친명배금 정책으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자위권을 갖지 못한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미처 강화도로 피란을 가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40여일을 버티다가 결국 삼전도에 나와 삼배구고두의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왕과 신하들의 무능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봉림대군 부부 그리고 삼학사(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을 볼모로 청나라에 끌고가면서 병사들을 물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