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초기 자국민을 노비로 한 비중은 30~40%정도나 됩니다. 중국의 명, 청시대에 10%, 일본 에도 막부 시대도 노비 비중은 낮았습니다. 예외적으로 그리스의 대표적인 폴리스로 스파르타는 헤일로타이 비중은 80%나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조선 초기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노비제도를 활용했습니다. 노비는 신분적으로 최하층이지만 농업생산력 증가 등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천교혼을 금지와 일천즉천으로 노비의 수는 증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 양난이후 신분제의 동요로 점차 노비수가 줄어들어 19세기에는 노비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