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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7.24

안중근 의사의 아들은 친일을 했나요?

일전에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에 대한 소설인 하얼빈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안중근 의사의 아들이 일본 신사 참배를 했다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안중근 의사의 아들은 친일파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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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둘째 아들이 그런 행보를 보였네요.

    장남 안우생(안분도)은 중국 만주에서 누군가에게 독살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이 점령한 상하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던 안준생은 결국 1939년 10월 16일 조선호텔에서 이토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와 마주 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 부친께서 어리석은 생각으로 당신의 아버님을 죽게 만들었다"면서 "아버지를 대신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고 역사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 치욕스럽네요.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7년 생이며 중국에서 머물다 상하이에서 사업을 했다. 이때부터 친일파로 변절했다. 1939년 10월 7일 만선시찰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위패를 봉안한 박문사(博文寺:현 서울시 중구 신라호텔 자리에 있었던 일제의 사찰)에서 자신의 아버지 안중근(安重根)이 이토를 저격한 것을 사죄하였다. 또한 10월 16일 조선호텔에서 이토의 차남 이토 분키치[伊藤文吉:이토가 집안의 하녀를 통해 낳은 아들]를 만났으며 이때 그에게 사죄하였다고 전한다.

    출처 :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은 일독 총독 미나미 지로 총독에게 회유를 받아 위령제에서 이토오 히로부미 총독을 죽인 것에 대한 사과를 하면 편안한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를 받고 1939년 사과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화제가 되어서 일본에서는 대서 특필을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결국 1951년 한국 전쟁 당시 폐결핵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독립 운동 투사의 아들로 태어나 힘들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그가 비록 친일 행동을 했다고 치더라도 과연 우리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지 의문이 듭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나미 총독은 안준생을 찾아와 경기도 경성부 서사헌정 박문사에서 위령제가 열리는데 그 자리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차남 이토 분키치에게 사과하면 삶과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1939년 10월 16일 박문사에서 사죄와 함께 일제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한 후 제 부친께서 어리석은 생각으로 당신의 아버님을 죽게 만들었는데 이에 아들로서 아버지의 오만방자한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퍼포먼스를 펼치게 됩니다.

    이에 아버지는 물론 아버지의 훌륭한 업적을 반겼던 조선인들로부터 천하의 불효자식, 친일 매국노,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더러운 개 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