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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4.01.30

금관가야의 이름에 '금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야는 6개의 나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금관가야는 김수로왕이 시조여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금관가야의 이름에 '금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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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금관가야라는 이름은 금관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는 거북이 모양의 장식이 발견되어 붙여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은 가락국의 철을 관리하겠다는 정복자 신라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지 금관이 아닙니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명이 금관주였습니다.

    금관주에 있었던 가야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에 지어진 이름이 금관가야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가야가 1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까지 변한 지역 연맹체의 중심국가였기 때문에 '가야'라는 말은 변한 지역 전체 또는 그 국가연맹체를 칭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금관가야에 이어 후기가야연맹을 이끌었던 반파국 역시 금관가야가 전기가야연맹을 이끌 때 쓰던 대가야란 이름을 연맹체의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한편, 가야의 다른 이름인 가라는 외국을 뜻하는 일본어의 'から(가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일본서기에서는 '가락국은 수나라'라고 쓰고 있는데 현대 우리말로는 '쇠나라'로 읽힙니다. 이는 왜와의 교역에서 가야의 주요 수출품이 쇠, 즉 철기였기 때문이었임을 추정할 수 있으며, 금관가야란 이름이나 삼국사기에 기록된 금관국이란 이름 역시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 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가야는 서기 전후부터 서기 532년까지 존속했던 전기 가야의 대표적인 나라였던 김해의 가락국을 일반적으로 부르던 호칭입니다. 김해의 가야세력을 가리키는 금관가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붙여진 이름이고 가야시대에는 대가락 또는 가락으로 불리었습니다. 가야의 철이 발달한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가야는 서기 전후부터 서기 532년까지 존속하던 전기 가야의 대표적인 나라인 김해의 가락국을 일반적으로 부르던 호칭 입니다. 김해의 가야 세력을 가리키는 ‘금관가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에 비롯된 조어이고 가야시대에는 ‘대가락 (大駕洛)’이나, ‘가락 (駕洛)’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애초에 가야측 기록이 남은게 없어서 정확한 역사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나라의 원래 이름이 한자로 금관국(金官國) 또는 가락국(駕洛國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발음중 하나가 가야 였던 것으로 추정 됩니다

    후대에 이 금관국을 중심으로한 변한지역 연합체가 나타나. 이것도 가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땅이 제일큰 대가야(반파국)이 후기가야의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원조 가야 금관국을 다른 가야와 구분하기 위해서 금관가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왜 이름을 저렇게 지었는지는 앞서 말 했듯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구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관가야는 3세기~5세기 전기 가야 연맹의 주도 국가입니다. 그런데 가야의 다른 이름인 가라는 외국을 뜻하는 일본어의 'から(가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일본서기에서는 '가락국은 수나라(須那羅)'라고 쓰고 있는데 '쇠나라'로 읽힙니다. 이는 왜(倭)와의 교역에서 가야의 주요 수출품이 쇠(鐵), 즉 철기였기 때문이었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김해의 가야 세력을 가리키는 금관가야 명칭은 고려시대에 비롯된 조어입니다. <삼국사기>에 금관국에서 비롯되었으며, 가야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대가락 (大駕洛)’이나, ‘가락 (駕洛)’으로 불리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