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3년 세종은 백성들이 당시의 문자인 한자를 쉽게 배우지 못해 우리 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않아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또, 정인지, 정초, 이천, 장영실 등에게 명해 천문 관기구인 간의 , 혼천의 , 혼상, 천문 기구 겸 시계인 일성정시의 , 해시계인 앙부일구, 물시계인 자격루, 누호 등 백성들의 생활과 농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과학기구를 발명하도록 했으며 흠경각을 세워 과학 기구들을 설치했습니다.
조선의 4대 왕인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에도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소통의 어려음을 살피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집현전 학자들은 한자 사용으로 중국의 선진문물을 들머올 수 있으며 한자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며 상소를 올려 반대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상소를 한 집현전 학사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버렸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정책으로 앙구일구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등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