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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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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국천왕이 우씨 왕후의 친척들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구려의 우씨 왕후와 연나부는 고국천왕을 도와 전쟁을 했는데요.

그럼 공신인데 왜 연나부 출신인 우씨 왕후의 친척들을 죽이려고 한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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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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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역사는 사료가 부족하여 많은 부분을 행간을 통한 추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국천왕은 귀족들의 연합체인 오부체제로 이뤄져 있습니다. 때문에 초기 고구려를 공화정으로 보는 역사학자들도 있습니다.

    고국천왕의 전대인 신대왕은 연나부의 명립답부의 반정 덕분에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명립답부는 현명하고 공평한 재상이었으나 그의 사후 연나부는 막대해진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권력을 가지고 다음 왕인 고국천왕의 왕비로 연나부의 수장 우소의 딸을 밀어넣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고국천왕은 이런 외척의 전횡을 줄이고 왕권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해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후로 연나부의 전횡은 계속되었고 190년(고국천왕 12) 9월에는 연나부 출신 중외대부(中畏大夫) 패자(沛者) 어비류(於卑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반란을 진압한 고국천왕은 귀족 중심의 오부체제를 지방과 행정구역 중심의 동서남북중앙부로 바꾸고 능력 위주의 인재들을 발탁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발탁한 인물이 안류였습니다. 하지만 안류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겸양하며 서압록곡 출신의 을파소를 추천하게 됩니다. 이 을파소가 우리 민족 최초의 구휼제도인 진대법을 설계한 인물입니다.

    최근 모 드라마에서 우씨 왕후를 영웅시하는 것은 그저 역사왜곡에 불과하니 그저 재미로 보시면 될 듯 합니다.

  • 우씨왕후는 180년 고국천왕의 왕비가 됩니다. 그러나 10년 뒤에 우씨왕후의 친척들인 좌가려와 여비류 등이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자 고국천왕이 처벌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여 좌가려와 어비류는 반란을 일으켰으며 결국 왕의 군대에 의해 진압된 것입니다.

    이후 고국천왕은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을파소'를 고구려 최고 벼슬인 국상으로 등용하고 강력하게 정계 개편을 추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