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이 서경 천도를 주장한 것은 풍수도참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고려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개경의 지덕이 쇠약해졌기 때문이고, 반면에 서경은 왕기가 서려 있어 이 곳으로 천도하면 국운이 융성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묘청 일파는 서경천도를 통해 개경 세력을 억누르고, 서경 출신 세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묘청은 금나라 정벌과 칭제건원을 통해 금나라에 대한 굴복적 외교에서 벗어나 자주적 북진 정책을 펼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서경 천도 운동은 개경파와 충돌을 일으켜 내란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고려 정치 질서에 큰 균열을 남겼고, 이후 무신 정변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