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유럽 장미 전쟁의 승자는 어느 나라라고 볼 수 있나요

유럽의 잔인하고 필요한 오래된 전쟁 장미 전쟁으로 백성들이 참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요 최종적으로 장미 전쟁은 진정한 승자 누구라고 볼 수 있나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존의 다른 전쟁들, 흔히 외부의 다른 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보통 병력을 통솔하며 전장에 나서서 싸우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참전하는 귀족이 있는가 하면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참전하는 귀족이 있어서, 전장에 나선 귀족이 전사해도 후방에 있던 귀족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귀족의 수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더군다나 설령 그 전장에 나선 귀족이 포로로 잡히면 어지간해서는 몸값을 받고 풀어주었기 때문에 귀족층의 생환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 이전에 귀족층들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질 좋은 장비로 무장하고 있어서 허접한 장비로 무장해서 잘 죽어나가는 부하들과는 달리 사상률 자체도 낮았다.

      하지만 장미 전쟁의 경우, 잉글랜드의 모든 귀족이 직접적으로 참전해야 하는 싸움이다보니 사상자 비율이 높았고, 포로로 잡는 것도 살려서 보내면 또 싸워야 하는 적수가 되기 때문에 포로를 잡지 않게 되면서 귀족의 생환률이 상당히 떨어졌다.[28] 이 때문에 장미 전쟁이 종료되어 제2대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가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7세로 즉위할 때까지 살아남은 귀족 가문은 전쟁 전의 3할에 불과했다. 자연스레 세습직인 의원들도 숫자도 줄어 29명밖에 남지 않았다.[29] 이는 국정을 논의하기엔 너무 적은 수였고, 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힘도 약해지게 되었다. 귀족들의 힘이 기나긴 내전으로 엄청나게 약해지자, 잉글랜드에서는 국왕의 권력이 아주 강력해지기 시작했다. 장미전쟁이 끝나고 헨리 7세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유일한 절대왕정인 튜더 왕조를 세웠다.

      문제는 당시 귀족이 고등교육을 받아 사회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고급 인력이었기 때문에 귀족의 수 감소는 사회 운영의 어려움으로 이어졌고, 결국 사회 운영에 필요한 귀족 대신 사회를 운영할 인재 수를 메우기 위해 요먼 및 젠트리와 같은 평민 출신의 실력자(제3계급)를 많이 등용하게 되었다. 이는 훗날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바탕이 되었고, 영국의 왕가 역시 프랑스 혁명과 같은 대규모의 혁명을 피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왕 목이 날아간 건 차이 없지

      한편 이 전쟁은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이후로 지금까지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30]이라는 칭호는 잉글랜드 및 이후 영국 국왕이 보유한 비공식 칭호들 중 하나로 간주된다. 명시적으로 랭커스터 공작의 칭호를 국왕에게 부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랭커스터 공작령(Duchy of Lancaster)은 왕실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처럼 되어 있고, 관행적으로 국왕/여왕을 랭커스터 공작이라고도 부르는 등 관례가 남아있다. 특히 랭커스터에서...[31]

      반면 랭커스터 가문의 맞수였던 요크 가문의 요크 공작(Duke of York) 칭호는 용도가 바뀌어서 주로 잉글랜드·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에게 부여하는 칭호가 되었다. 이 관행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요크 공작의 칭호를 쓰고 있다. 이상하게도 약 20명의 역대 요크 공작들은 자신의 작위를 후손에게 물려 준 사례가 한 번도 없었다. 남성 후계자 없이 사망하거나 스스로 영국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앤드루 왕자 또한 남성 상속인이 없기에 이론적으로 다음 요크 공작은 해리 왕자이다. 하지만 해리 왕자는 왕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기에 찰스가 즉위해도 요크 공작 작위를 받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추후에 윌리엄이 즉위한 후, 윌리엄의 차남인 루이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

      랭커스터 대학교와 요크 대학교가 정기전을 치루는데, 서로의 특수한 관계성 때문에 장미전쟁의 영향을 받아 정기전 이름은 'Roses'라고 부른다.

      조지 RR 마틴이 장미 전쟁에서 영감을 얻어서 《얼음과 불의 노래》의 《다섯 왕의 전쟁》의 설정을 완성했다고 한다. 사실 그 이전에 스타크 가문과 라니스터 가문의 이름부터가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에서 따왔다.

      현존하는 영국 귀족 가문들 중 가장 오래된 가문들은 이 시대와도 관련이 깊다. 영국 귀족 서열 1위인 노퍽 공작 하워드 가문은 리처드 3세의 충실한 지지자였던 존 하워드가 하사받은 공작위에서 기원하며,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의 네빌 가문은 리처드의 숙부의 계보인 애버개브니 후작으로, 네빌 가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노섬벌랜드 백작 퍼시 가문은 모계 계승을 거쳐 노섬벌랜드 공작으로 이어졌다. 랭커스터 왕조의 사생아 분파이자 가장 충실한 지지자였던 서머셋 공작 보퍼트 가문은 다시 사생아를 통해 가문이 이어져 보퍼트 공작 서머셋 가문이 되었다. 이외에도 헌팅던 백작 헤이스팅스 가문, 데본 백작 코트니 가문, 더비 백작 스탠리 가문, 슈루즈버리 백작 탤벗 가문 등이 있다.

      출처: 나무위키 장미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