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중공이 북한을 돕기 위해 군을 파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수는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입한 6.25전쟁 당시 중공이 북한을 돕기 위해 군을 파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수는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습니다.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6.25 전쟁당시 미국의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북한 압록강까지 회복할 정도로 승리의 단계였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후퇴라는 후퇴가 시작되었고, 전세는 뒤집어 졌습니다. 이때 중공군의 개입은 60만대군이라 할 정도로 많은 병력이 압록강을 넘어 북한 땅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 참전국들은 유엔이 요구하는 최소 규모인 1개 대대 병력 (약 1,200명) 이상을 파견하였습니다

    주요 참전병력은 1953년을 기준으로

    영국 약 1만 4,200명, 캐나다 약 6,100여 명, 터키 약 5,500여 명,

    호주 2,200여 명 등이 파견됐는데

    1953년까지 한국전에 참여한 연합군은 미국을 제외한

    총 3만9천여 명에 이르며

    미국을 포함할 경우 총 34만 1천여 명에 이른 수치죠


  • 총 동원병력과 최대파견병력이 구분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모든 병사가 한번에 다 전장에 투입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총 동원병력 40만명~100만명 정도로 보더라구요.

  •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를 뒤집고 완전히 전쟁을 승리로 끝낼 기회가 왔는데 중공군의 개입으로 뜻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이 때 투입된 중공군은 30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6.25전쟁 당시 중국(중공)은 1950년 10월에 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으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참전했습니다. 중국이 파견한 군대의 규모는 약 30만 명에서 10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전쟁 중 다양한 시기에 따라 변동이 있었습니다. 중국군의 참전은 전쟁의 전세를 크게 변화시켰고, 휴전 협정 체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6.25전쟁 당시 중공이 북한을 돕기 위해 파견한 군의 정확한 수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지속적인 병력 교체: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병력이 지속적으로 교체되었고, 정확한 파병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기록의 부족: 당시의 기록이 완벽하게 보존되지 않았거나, 일부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추정치의 차이: 연구자마다 사용하는 자료와 분석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추정치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