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1883년 보빙사가 미국에 가서 어떤것들을 보고 배워서 조선으로 돌아왔나요?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에 보낸 외교사절단인 보빙사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1883년에 미국은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고 있었나요? 당시 사절단이 미국에서 새롭게 보고 배운 것들은 무엇이고,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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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찰단은 7개월간 미국을 체류하며 다양한 분야를 탐방하고 서양 문물을 배우며 조선의 개혁을 꿈꿨습니다. 귀국 후 작성된 "견미일록"은 당시 미국 사회의 모습과 박정양의 개혁 의지,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빙사는 1883년 7월 15일 미국에 파견된 외교사절단으로 이들은 미국에서 대통령을 만나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으며,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조선의 개화에 기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3년-1884년까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으로 보빙사절단은 미국 공사 파견에 대한 답례와 개화ㆍ자강정책 등에 필요한 인적ㆍ물적 자원 요청을 위해 미국에 파견되었습니다. 1883년 9월 1개월 동안 미국에서 자주외교를 전개하고 개화정책에 필요한 미국인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근대적 시설과 문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 중 민영환은 유럽의 각국을 시찰하였습니다. 그들의 시찰은 조선이 호의적인 미국관을 형성하고 개화정책을 추진하는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 경제 군사적으로 유럽보다 앞선다고 판단한 보빙사들은 적극적으로 미국을 끌어들이고자 노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