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에 비해 부동산이 아닌 고리대금업에 많이 종사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자’에 대한 상이한 관점 때문 입니다. 기독교는 이자가 시간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므로 시간의 주인인 하나님께 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1179년 로마 교황청은 기독교인들이 공식적으로 대금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반면 유대교는 동족이 아닌 이방인과의 거래에서 이자를 받는 것을 허용했는데 중세 기독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죄악으로 여겼고, 영혼을 지옥에 파는 것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십자군 운동과 종교개혁을 통해 기독교 중산층들이 대금업에 진출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게 되었는데 유대인들이 독점하던 대금업에 뛰어든 기독교 중산층들은 국제적인 무역과 금융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유대인들과 공정한 경쟁을 해서는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정부에 유대인들을 추방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국제 협약인 탈무드와 법률적 권위자인 랍비가 있어서 대금업을 할 때 적절한 이율을 받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탈무드에는 '과도한 이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명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중산층들에게는 탐욕을 제어해 줄 아무런 장치가 없었고 국민들이 높은 이자율로 고통을 받자 서유럽 국가의 의회는 유대인 대금업자를 다시 자국으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왕에게 청원했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위기감을 느낀 기독교 중산층들이 왕에게 뇌물을 바치며 적극적인 로비에 나섰고, 동유럽에서 자리를 잡은 유대인들도 다시 서유럽으로 돌아갈 마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하지만 대출 이자율이 갈수록 치솟고, 대출 문턱도 점점 더 높아지자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고, 결국 왕은 유대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