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었나요?
신라시대에도 현대와 같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가듯 마음대로 거주지를 이전할 수 있었나요? 사극을 보면 평민도 마음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던데 거주의 이전도 마찬가지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장적에는 농민 가운데 촌에서 도망친 숫자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4개촌의 총인구 462명 가운데, 남자 204명, 여자 258명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54명이 더 많습니다. 특히 '정'의 연령층에서 남녀의 숫자가 44명이 나차이가 납니다. 이는 병역 기피나 머슴살이를 위해 떠난 장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라 농민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가가 농민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한 이유는 농민을 토지에 결박하여 그들에게 조,용, 조와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핵심으로 국가 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예 이동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민정문서를 보면 전입자(호)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라는 골품제를 통해 골품에 속하지 않은 평민들이나 유민들은 거주 이전의 제한이 엄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국가 이후 고려·조선시대에서는 문무반을 중심으로 한 상급지배신분층과 중간계층인 기술관·서리·군교·사관 등 하급지배신분층은 정치적 관료, 경제적 토지소유자, 사회적 지배자 혹은 실용기술 및 행정실무의 집행자로서의 특권을 향유하면서, 동시에 거주·이전의 자유에 대한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았지만 그러나 피지배신분층이었던 양인과 노비는 양반이나 하급지배신분층인 중간계층의 통제를 받는 처지였고, 소작전호 혹은 <노비세전법>의 대상자로서 거주·이전에 일정한 제약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완전히.주어진 것은 19세기.동학 운동등 이후라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