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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23.02.12

조선시대에도 소방서같은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대찬밀잠자리170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소방서처럼 화재를 우선적으로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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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8년 (1426년) 2월 15일 한양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여 민가 약 2,100호와 행랑 106칸이 불에 타고 사상자만 32명, 실종자도 많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426년 2월 26일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습니다. 금화도감에는 불을 끄는 군인들인 금화군이 소속되어 있었는데요,

    이 금화군이 세조 시절 확대되어 멸화군(滅火軍)이 되었습니다.


    멸화군은 약 50명 정도의 군인들로 구성 되었고, 그중에는 물을 긷는 일을 하는 여자 종, 급수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1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소방서와 소방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 전기에 한양을 건설하고 나서 화재가 잦자 집 사이에 방화장(防火墻, 불을 막는 담)을 쌓고, 곳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개량했고, 1426년(세종 8) 일종의 소방서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였습니다. 이 금화도감은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이 되었다가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고쳤지요.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에는 멸화군(滅火軍)이란 상근소방대원이 있었는데 불을 없애는 군사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정원은 50명이었고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즉시 출동해서 불을 끄는 소방관입니다.
    조선시대엔 실수로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장 40대, 관가나 다른 사람의 집을 태운 사람은 장 50대, 불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는 장 100대의 형을 받았지요. 일부러 집을 태우면 처벌이 더 무거웠음은 물론입니다.
    출처 : 백세시대(http://www.100ssd.co.kr)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소방서는 금화도금이라고 있었습니다.

    불을 끄는 사람들은 금화군이라고 군인이었습니다.

    금화군이 확대되어 세조시절 멸화군으로 바뀌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세종 8년(1426년)에 한양의 화재 예방을 위하여 '금화도감'이라는 관청을 만들었어요. 오늘날의 소방서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지요. 그러나 금화도감은 소방서와 큰 차이점이 있었어요. 금화도감에서는 불이 났을 때 소방관들이 직접 출동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금화도감에서는 주로 백성들에게 화재 예방 교육을 실시했어요. 또 큰 불을 예방할 수 있게 집과 집 사이에 담을 설치하여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을 막도록 했어요. 이 때 울타리나 담은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로 짓게 했답니다. 그리고 불이 났다 하더라도 재빨리 끌 수 있게 미리 대비를 해 두었어요. 사다리와 물 푸는 그릇 따위를 각 마을마다 준비해 둔 거예요. 우물이 부족한 마을은 물독을 다섯 집마다 한 개씩 갖춰 방화수를 저장해 두었답니다.
    금화도감에서는 또 화재로 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살펴 주었어요. 가여운 백성들이 당분간 먹고살 수 있게 곡식과 살림살이를 내주었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 시대에도 불을 끄는 소방서가 있었을까? (천재학습백과 초등 역사 상식 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