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인조의 삼전도굴욕이란 어떤사건이였나요?
조선시대 인조때 인조가 삼전도굴욕을 당했다고 들었는데요, 근데 인조의 삼전도굴욕이란 어떤사건이였나요? 그리고 삼전도비라는게 세워진 이유도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7년 2월 24일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한양으로 빠르게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하나 청군이 길을 막아 강화도로 갈수없게 되고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합니다.
그러나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끝내 청나라와 치욕스러운 강화를 맺으니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합니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나라에 패배하여 강화협정을 맺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청 태종의 요구로 인조 17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가 강화도에서 청나라를 무찌르는 것을 실패하고 더 이상 피해를 맏기 위해서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 절하고 복속 국가가 된 것입니다. ㅠ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①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세자와 신하들을 이끌고 남한산성 문을 나와 삼전도1)에서 청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삼배구고두)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습니다.
② 청의 황제는 인조의 항복을 받고, 삼전도비를 세우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