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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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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부인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퀴리 부인은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이며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 등을 수여받는 등 과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아는데요.


퀴리 부인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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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67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출생, 결혼 전 이름은 스쿼도프스카 입니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하에 있었는데 바르샤바는 러시아령이어서 어릴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정을 겪으며 자랐고 아버지는 김나지움의 수학 및 물리학 교사였으며 10세때 어머니를 잃고 17세 무렵 가정교사 등을 하며 독학했습니다.

    당시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수없어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결심,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으며 수학, 물리학을 전공,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1895년 피에르 퀴리와 결혼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 남편과 공동으로 연구 생활을 시작, 당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잇달아 발견된 시기였는데 뢴트겐의 X선발견, H.베크렐의 우라늄 방사능 발견에 자극을 받아 퀴리 부부도 방사능 연구에 착수, 먼저 베크렐의 추시부터 시작했는데 부부는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하는데에 전기적 방법을 사용, 그것은 방사선의 정량적 측정법으로서 베크렐의 사진법보다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도륨도 우라늄과 마찬가지의 방사선을 방사한다는 것을 발견, 그것을 방사능이라 명명했습니다.

    또 방사능이 원자 자체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여러 가지 시료에 대해 측정하던 중 우연히 우라늄 광물 피치블렌드가 우라늄 자체보다도 강한 방사능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 속에 미지의 강한 방사성 성분이 존재할 것이라 추정, 이것의 추출을 시도했습니다.

    보헤미아의 요아힘스탈에서 산출되는 피치블렌드에서 방사되는 방사능을 바탕으로 화학 분석을 하여 1898년 7월 폴로늄을 발견, 이것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 명명, 이어 그해 12월 라듐을 발견했습니다.

    이 두원소는 방사성 원소로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라듐은 우라늄에 비해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 발견은 방사성 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03년 퀴리 부부는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피에르는 소르본대학 이학부 교수, 마리는 그 실험실 주임이 됩니다.

    1906년 남편이 마차에 치어 사망후 단독으로 방사성 물질을 계속 연구, 1906년 5월 남편의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소르본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07년 라듐 원자량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는데 성공, 1910년 금속 라듐을 분리하는데 성공, 1914년 소르본 대학에서 그녀가 연구에 더 집중할수있도록 라듐 연구소를 건립, 제 1차 세게대전이 일어나고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해오자 라듐을 스위스로 옮겼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연구, 전쟁 중 장녀 이렌과 함께 부상자 치료를 위해 뢴트겐 투사기를 보급하는데 노력, 많은 부상자들이 목숨을 구했으며 이 공로로 파리 의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라듐연구소는 이후 파스퇴르 실험소와 퀴리 실험소가 되었는데 그녀는 퀴리 실험소소장으로 프랑스의 과학 연구에 공헌했습니다.

    1911년 라듐과 폴로늄 발견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고 이후 연구소의 운영은 이렌에게 맡겼으며 이렌은 마리 퀴리의 실험 조수로 있던 F.졸리오 퀴리와 결혼 후 1935년 남편과 함께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습니다.

    마리 퀴리는 그동안의 실험으로 몸이 쇠약해져 스위스에서 요양했지만 1934년 7월 4일 백혈병으로 사망, 사후 61년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되어있는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퀴리 부인은 1867년 11월 7일, 동부 유럽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생 중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어렸을 때 프랑스의 파리로 수학, 화학, 물리학 등을 배우기 위해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폴란드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대학에 가려고 한다면 다른 나라의 대학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당시 파리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던 "피에르 퀴리"와 결혼했으며, 그녀가 세운 위대한 업적은 남편과 함께 세운 것들입니다. 퀴리 부부는 방사능을 함유한 '라듐'을 발견하였습니다. 마리는 방사능의 성분을 연구하여 두 가지 성분을 발견하였는데, '라듐'과 '폴로니움'입니다. 마리는 이 연구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성으로서는 최초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 한번 최초의 여성이 되었는데, 소르본 대학 강당에서 학생을 가르친 최초의 여성이었답니다. 당시의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자연방사능을 발견한 프랑스의 물리학자 "안토니오 헨리 바쿠에렐"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마리는 방사능의 성분 연구에 계속하였고, 1911년에는 두번째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이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914년, 마리는 프랑스의 파리에 라듐 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얼마 후 라듐 연구소는 그녀의 업적을 기려 '퀴리 연구소'로 명칭을 바꾸어 운영되었습니다.
    마리 퀴리는 1934년에 생을 마감하였는데, 추측하건데 오랜 연구로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방사능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싶어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폴란드 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입니다. 그녀는 최초로 방사능을 발견하고, 방사능의 성질을 연구한 공로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 19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이며,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과학자입니다.


    퀴리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891년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1895년 피에르 퀴리와 결혼했으며, 함께 방사능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퀴리 부부는 1896년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습니다. 폴로늄과 라듐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방사능 물질입니다. 퀴리 부부는 폴로늄과 라듐의 발견으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퀴리는 1911년 라듐의 성질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이며,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과학자입니다.


    퀴리는 1934년 4월 4일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업적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퀴리의 발견은 암 치료, 의학 진단, 원자력 발전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