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의 추산은 몇명 정도인가요?
잍제강점기에 남자의 독립운동한 투사들은 고증을 통해 어느정도 기록으로 알수있지만 여성운동가는 그냥 묻치고 찿지을못해 많이 아쉽고 널리 알리고싶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 운동의 현장에서 많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유관순을 비롯해 당시 거리와 감옥에서 여성들의 모습은 여성이 독립운동의 주체였습니다. 개성의 권애라, 어윤희는 호수돈여학교를 중심으로, 부산의 주경애, 박시은 부산 경남지역의 첫 만세 시위인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운동을 지휘했습니다.
1920년 대 많은 여성단체들이 만들어졌으며, 대표적인 조직으로 좌우합작의 여성 단체인 근우회는 국내외 60여개의 다지회를 두었습니다. 1929년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당시 근우회 허정숙, 박차정 등이 여학생 만세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1930년대 초 평양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순국한 강주룡은 고무 공장주의 임금 인하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을밀대 지붕 위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체공녀(滯空女) 즉 ‘공중에 떠 있는 여자’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맹렬하게 활동했습니다. 1930년대 초 여학교를 다닌 신여성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이병희 등도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무장투쟁에서도 여성들은 빠지지 않습니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처럼 총칼을 들고 싸운 여성 무장투쟁의 선구자로 의병 윤희순과 근대의 여걸 남자현이 있습니다. 근우회 활동을 했던 박차정은 중국으로 가서 의열단원이 되고 조선혁명간부학교의 여성 교관으로 활동했습니다.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조직 대원에는 여자광복군이 정식으로 입단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을 비롯하여 신정숙, 오광심, 김정숙, 지복영, 김영실, 김일옥, 조순옥, 민영주, 신순호, 윤옥 등이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전체 서훈 가운데 3% 남짓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