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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6.10

조선시대 무게를 재거나, 길이를 재는 단위는 어떤 것이 있나요?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된 물체를 측정하는 각종 단위가 정해져있는데요. 조선시대에는 물체의 무게를 재고, 길이를 재는 단위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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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량형의 기준은 척입니다. 척을 이용하여 양기(量器)와 형기(衡器)를 제작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척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자료에 의하면 건국초기부터 다양한 명칭과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고려할 때 조선전기부터 상당히 많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전기에 제작된 척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에 실제 현존하지 않고, 현전하는 것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척의 종류와 길이에 대해서는 『경국대전』에 의하면 ‘길이의 제도는 10를 1분으로, 10분을 1촌으로, 10촌을 1척으로, 10척을 1장으로, 주척(周尺)을 황종척(黃鍾尺)에 비교하면 주척 1척은 황종척의 6촌 6리이고, 영조척(營造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영조척 1척은 황종척의 8촌 9리이고, 조례기척(造禮器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조례기척 1척은 황종척의 8촌 2분 3리이고, 포백척(布帛尺)을 황종척에 비교하면 포백척 1척은 황종척의 1척 3촌 4분 8리이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척은 10리(釐)가 1분, 10분이 1촌, 10촌이 1척, 10척이 1장을 단위로 하고, 종류는 기준척인 황종척과 영조척 · 조례기척 · 포백척 · 황종척 등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척의 종류는 황종척, 주척, 영조척, 예기척, 포백척 등이 존재하였고, 황종척의 길이를 알면 다른 척의 길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먼저 양기의 단위는 조선전기 『경국대전』에 의하면 ‘작(勺) · 합(合) · 승(升) · 두(斗) · 석(石)’으로 이루어져 있고, ‘작 · 합 · 승 · 두’는 10진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두와 석의 관계는 15두=1석과 20두=1석이었습니다. 양기의 부피는 『세종실록』에 의하면 1446년(세종 28) ' 의정부에서 호조의 정장(呈狀)에 의거하여 계청하기를 새로운 영조척으로 곡 · 두 · 승 · 합의 체제를 다시 정하여 곡의 용적이 20두인 것은 길이 2척, 너비 1척 1촌 2분, 깊이 1척 7촌 5분으로 용적이 3,920촌이고, 용적이 15두인 것은 길이 2척, 너비 1척, 깊이 1척 4촌 7분으로 용적이 2,940촌이고, 두는 길이 7촌 너비 7촌 깊이 4촌으로 용적이 196촌이고, 승은 길이 4촌 9분, 너비 2촌, 깊이 2촌으로 용적이 19촌 6분이고, 合은 길이 2촌, 너비 7분, 깊이 7촌 4분으로 용적이 1촌 9분 6리가 되게 하소서 하니 이를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전기 양기의 부피는 ‘곡 · 두 · 승 · 합’의 규정에 따라 1446년에 제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의 무게를 재는 단위는 리, 푼, 돈, 냥, 근 등이 있었습니다. 길이를 재는 단위는 척이나 자를 썼는데 약 18c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차차 길어져 한 (漢)나라 때는 23cm 정도, 당 (唐)나라 때는 24.5cm 정도로 되었으며, 이보다 5cm 정도 긴 것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및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32.21cm를 1자로 했으나, 세종 12년의 개혁시에 31.22cm로 바꾸어 사용해 오다가 한말 (1902년)에 일제의 곡척 (曲尺)으로 바뀌면서 30.303 cm로 통용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