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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날다람쥐151
정중한날다람쥐151

헤밍웨이가 낚시광인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 노인과 바다인데?

그런데 헤밍웨이와 쿠바의 카스트로가 낚시대회에서 경쟁했다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카스트로도 낚시광이어서 낚시대회를 열었는데 헤밍웨이가 일등을 하는 바람에 낚시대회를 없애버렸다는군요.

그럼 카스트로는 우리가 아는 전쟁영웅이 아니라 소인배아닌가요? 자신이 일등을 하지 않았다고 자신이 개최한 낚시대회를 없애버릴 정도면 전쟁영웅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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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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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한낙타174
    순수한낙타174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달라 답변을 남깁니다.

    1960년 제 10회 대회에는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아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참여했습니다. 카스트로는 전에 한번도 낚시를 해보지 못한 신참이었지만 우승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카스트로가 우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제가 알아 본 결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낚시 토너먼트’라는 대회가 있습니다.

    이 낚시 대회는 1950년 쿠바에 머물고 있던 헤밍웨이가 쿠바를 찾는 부자 친구들과 놀이로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낚시광인 헤밍웨이의 이름을 따서 대회 이름을 지었는대요. 낚시광답게 헤밍웨이는 그 해 대회를 비롯해 3년 연속 우승컵을 가져갔습니다.

    낚시 대회가 열리는 구간 중 아바나 동쪽 코히마르 마을은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으로 소설의 주인공인 노인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잡는 어부로 나옵니다.

    1960년 제 10회 대회에는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아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참여했습니다.

    카스트로는 전에 한번도 낚시를 해보지 못한 신참이었지만 우승했고 헤밍웨이가 카스트로에게 직접 트로피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 대회는 미국의 피그만 침공으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1961~1962년에는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그 뒤에도 분위기가 좋지않아 계속 열리지 못하다가 1978년에야 재개되었다고 합니다.

    이 대회는 해마다 5~6월이면 쿠바 해안에 전세계 낚시꾼들이 모여 열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낚시대회를 연 것은 카스트로가 아니었고

    헤밍웨이가 우승해서 낚시대회를 없앴던 것이 아니라 전쟁의 위기 때문에 낚시대회가 중간에 중단 되었던 것입니다.


    제 답변이 질문자님의 궁금증 해결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 내용중에 카스트로가 헤밍웨이가 우승했다고 낚시대회를 취소한건 사실이 아닌거 같습니다. 1950년 당시 쿠바에 머물고 있던 헤밍웨이가 쿠바를 찾은 부자 친구들과 놀이로 만든 것이 낚시대회의 시작이되었지요. 낚시광인 헤밍웨이의 이름을 따서 대회 이름도 지었구요. 헤밍웨이는 그 해 대회를 비롯해 3년 연속 우승컵을 가져갔고 잠시 미국으로 옮겨갔다가 1960년 다시 쿠바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에도 참가해 상을 탔습니다.1960년 제 10회 대회에는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아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참여했습니다. 즉 헤밍웨이가 낚시 초짜 였던 카스트로를 초대한것이고 그는 전에 한번도 낚시를 해보지 못한 신참이었지만 당시 우승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카스트로에게 직접 트로피를 전달하던 때가 두 사람이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한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대회는 70년이 넘은 지금도 계속 헤밍대회 낚시대회로 쿠바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