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점입니다. 실제로 역사학에서도 원 간섭기(1270~1356)가 조선의 대외관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원나라에 충성하던 문화가 그대로 명나라 사대주의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중간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핵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 간섭기에는 원나라가 고려 왕을 임명하고 내정에도 개입하는 등 사실상 종속 관계였습니다. 고려 왕실은 원 황실과 혼인했고, 많은 고려인이 원의 관료나 장군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는 원이라는 제국의 일부처럼 기능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 원이 쇠퇴하면서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펼쳐 원의 영향력을 크게 줄였습니다. 즉, 원에 대한 충성은 오히려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명나라는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도 성리학 국가를 지향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는 명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책봉 체제가 가장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외교 전략이었습니다.
즉, 조선의 사대는 단순한 굴종이라기보다
국제질서에 편입해 안보를 확보하고,
성리학이라는 공통 이념을 공유하며,
무역과 외교적 이익을 얻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원 간섭기의 경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지배층은 이미 강대한 제국과 외교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고, 황제국을 인정하고 그 질서 안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 문화도 어느 정도 계승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원 간섭기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볼 여지는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원 복속기의 경험은 조선의 사대 외교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지만, 조선의 대명 사대는 원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이어진 결과라기보다 당시 국제정세와 성리학적 세계관이 결합해 형성된 새로운 외교 노선으로 보는 것이 현재 역사학의 일반적인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