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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고릴라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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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를 구출하기 위한 사실이 있었나요?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뤼순 감옥에 갖히고 사형에 처할 위기에 있었는데요 그때 안중근 의사를 구출하기 위하여 독립군이나 정부에서 어떤 노력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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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소네 조선통감이 1910년 1월 8일자로 고무라 외무대신에게 보낸 또 다른

      보고서는 안중근 의사를 구출하기 위해 고용한 상하이의 영국인 변호사

      더글러스의 변호 비용을 고종 측근인

      민영익·민영철·현상건이 댔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고종이 파견한 두 밀사는

      연해주 한인들을 상대로 안중근 의사

      지원을 호소하는 등 구출 작업에 나섰고, 더글러스 변호사도 여순법정에

      출석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변론을 거부당해 안 의사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네 조선 통감이 1910년 1월 8일 자로 고무라 외무 대신에게 보낸 다른 보고서에는 안중근 의사를 구출하기 위해 고용한 상하이의 영국인 변호사 더글라스의 변호 비용을 고종 측근인 민영익, 민영철 현상건이 댔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고종이 파견한 두 밀사는 연해주 한일들을 상대로 안중근 의사 지원을 호소하는 등 구출 작업에 나섰고, 더글라스 변호사도 여순 법정에 출석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변론을 거부당해 안중근 의사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게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체포된 직후 고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밀사를 보내 안 의사 구출작전을 펼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10년 1월 29일 경성에서 하얼빈을 거쳐 마마자국이 있는 송선춘과 조병한이 황제폐하의 옥새가 찍힌 친서를 가지고와 안중근을 옥중에서 구출할 것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블라디보스토크에 고종의 밀사들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으로 각각의 용모에 대한 묘사와 외국어 구사력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1910년 2월 4일 밀사를 위해 안중근과 그 유족을 위해 모은 돈을 사용하는 것은 안된다. 밀사에 대해 진위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1910년 2월 17일 폐하의 옥새가 찍인 밀서를 가지고 여순감옥의 안중근을 구해내어 우리 동포와 함께 힘을 다해 러시아 국의 재판에 맡기기 위해 왔다 (밀사의 임무)

      이는 저격 사건 발생지가 러시아의 조차지라는 점을 이용해 안중근을 일본 법정이 아닌 러시아 법정에 세우려했습니다.

      1910년 3월 2일 두명의 밀사는 결코 가짜가 아닙니다. 한국의 스파이의 보고에 의하면 반일운동의 본원지는 논할필요없이 고종황제라고합니다. 지난해 10월 하얼빈 흉변도 궁에서부터 선동한 것으로..

      한국인 밀정이 준 정보는 토대로 한 내용으로 고종이 안중근을 구출하여하는 배후일뿐 아니라 훨씬 전 발생한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에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지적,

      마지막 문서는 경찰청 통감이 외무대신에게 보낸것으로 안중근의 변호사 비용을 고종 측근들이 댔다는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 고종 황제 안중근 의사 구출 시도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 › shaopiao

      日, 안중근 의거 배후로 고종 지목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체포된 직후, 고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밀사 보내 안 의사 구출 작전을 펼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