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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4.01.02

조선어 사전이 편찬된 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조선어 사전은 일제강점기 조선어 학회에서 시작된 것으로만 알고 있고, 영화 소재로도 쓰였었잖아요.

실제 조선어 사전이 편찬되었던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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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0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어사전의 편찬 고자ㅓㅇ이 궁금하군요.

    단 하나의 우리말 사전도 가지지 못한 민족적 수치를 덜기 위해 조선어학회가 주동했습니다. 108명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 이극로·이윤재·정인승 등을 편찬책임위원으로 하고, 준비작업으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38) 등을 발표, 사전 편찬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어말살정책을 펴고 조선어학회를 탄압함으로써 그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해방 후 한글학회가 사업을 이어받아, 57년 <큰사전> 6권을 발간했습니다.

    문세영이 편찬한 국어사전. A5판. 1938년 조선어사전간행회에서 간행하였다. 권두에 ‘지은이말슴’ 3면, ‘일러두기’ 5면, 본문 1,634면, 권말에 ‘한문글자 음찾기’ 26면, ‘이두찾기’ 21면 등 총 1,689면이다. 본문은 4단으로 세로로 짜여 있습니다. 이 사전은 1940년 12월에 약 1만단어를 추가하고 일부 주석을 보완하여 약 200여면을 증면, 1,854면으로 하여 수정증보판을 출간하였는데, 출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저작권이 강의영에게로 넘어갔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시경 선생은 제자들과 같이 1911년 조선어연구학회를 만들고 사전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3년 뒤 중단돠고 주시경의 뜻을 이어 조선광문회에 계명구락부를 결성해 사전 작업을 재개했지만, 수양회 사건 등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느데 다시 사전 편찬의 불씨를 되살린 이는 조선인 최초로 유럽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극로였다고 합니다. 독일 유학시절 대학에 조선어과를 개설하고 한글을 가르치면서 누구보다 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그가 조선으로 돌아온 후 그는 조선어연구회 안에 사회 각 분야의 인사 108인을 발기인으로 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만들었는데 '사회 가계 유지망라 조선어사전편찬회' 라는 동아일보의 기사뿐만 아니라 당시 언론들이 주목했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날 시인 이은상이 쓰고 낭독한 발기문은 훗날 조선어학회에서 방언 조사 활동을 시작할 때 <한글>에 재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어학회 안에 사회 각 분야의 인사 108인을 발기인으로 한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만들었습니다. 1939년 초 드디어 어휘의 정리와 해설이 완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어 사전의 편찬은 대한제국에 들어와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글 맞춤법들을 전문가들이 개선시키고 여러 어휘를 정리하고 의미를 통일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이후 대한민국 수립되고나선 국어원이 설립되며 더욱 전문적으로 사전이 편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