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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후루티55
하얀후루티5523.08.19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주장했던 내선일체의 논리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선일체란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라는 주장인데요.

일제는 어떻게 일본-조선이 하나라는 논리를 펼쳤던 건가요?

그냥 단순무식하게 하나라고 믿으라고 하고 안 믿으면 처벌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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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內)'라 함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 그들의 해외식민지를 '외지(外地)'라 부른 데 대한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내지(內地)'의 첫자이며, '선(鮮)'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과 조선이 일체라는 뜻이다. 그들은 이미 1931년 만주사변 때 일만일체(日滿一體)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37년 일본이 중국 침공을 개시하자, 당시의 조선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는 이 대륙 침공에 조선을 전적으로 동원·이용하기 위한 강압정책으로 '내선일체'라는 기치를 들고 나섰다. 한민족의 저항을 초기부터 말살·차단하려는 철저한 민족말살정책이었다.

    이른바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라는 미명 아래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구호를 집회 때마다 제창하는 것을 비롯, 신사참배(神社參拜) 강요, 1938년에는 지원병제도로 강제출병, 조선어교육 폐지 및 일본어 상용(常用), 1940년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고, 또한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내선동조동근론(內鮮同祖同根論)을 주장하며 그들의 조상이라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신위를 가정마다 모셔야 한다는 양상으로 근원적인 한민족말살정책을 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양대(兩大)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탄압 끝에 조선어로 된 출판물은 전면 강제 폐간시켰다.


    한편 대륙침공의 전초 기지로서 한반도에 군수산업을 이식하여, 군수물자 생산과 자원개발에 조선인을 징용하여 공장과 광산으로 보냈다. 1940년까지만 해도 국내동원 260여 만 명, 일본 및 점령지역에 72만 명에 이르렀다. 이 무렵 일제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대(對)아시아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마침내 1941년 12월에는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발발시켰다. 이런 추이 속에 1942년 5월 한반도 징병제, 1943년 8월 해군특별지원병제, 10월 학도병제 실시로 젊은이들을 대량 동원시킴으로써 민족말살정책은 극도에 이르렀다. 내선일체란 군국 일제의 전쟁야욕 성취를 위한 한민족말살정책의 대명사였다.

    출처 :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선일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조선인들의 항거를 억누르기 위한 이념적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내선일체로 조선인들에게 일본과의 동일성과 통일성 강조, 일본의 문화, 언어, 교육 체계를 강요하고 일본식 생활양식, 일본어 사용을 강제, 일본의 국가주의적인 교육정책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심으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