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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캐슬
아이언캐슬23.04.03

미국 자유의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만든것인가요?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프랑스에서 만든것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그러면 그렇게 큰 자유의 여신상을 어떻게 미국까지 운반을 한것인가요? 그리고 프랑스가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보내준 이유와 시대적인 배경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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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립전쟁 승리 100주년 기념으로 자국의 미국진출을 위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했던 프랑스가 만들어서 선물했다. 최초 착안자는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노예폐지론자였던 에두아르 르네 드 라부라이에(Édouard René de Laboulaye, 1811.1.11~1883.5.25)였다. 제작은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 1834.8.2 ~1904.10.4)가 맡았으며, 내부의 뼈대는 에펠 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여신의 얼굴은 바르톨디가 자신의 어머니가 만 18살이던 시절의 모습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제작비용은 프랑스 국민들의 성금 40만 달러.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이지만 실제로 미국 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이다. 물론 이때도 여신상을 통째로 들고 온 건 아니고, 여신상의 겉면을 구성하는 300개의 구리판을 프랑스에서 제작한 다음 배로 미국으로 운반해 4개월 동안 재조립했다. 그런데 배송을 완료했더니 정작 조립 과정을 충당할 예산이 없어서 상자에 담긴 채 항구 하역장에 박혀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는데 이 사연을 들은 퓰리처에 의해 신문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고 금액이 금방 모였다.

    출 처 : 나무 위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전쟁 승리 100주년 기념으로 자국의 미국진출을 위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했던 프랑스가 만들어 선물한 것입니다.

    실제 미국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로 여신상을 통째로 들고 온 것이 나리고 여신상의 겉면을 구성하는 300개의구리판을 프랑스에서 제작후 배로 미국으로 운반해 4개월동안 재조립했습니다.

    배송완료 후 조립과정을 충당할 예산이 없어 퓰리처에 의해 신문모금캠페인이 벌여 모아 조립했습니다.


  •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 기증한 것입니다. 여신상의 공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입니다.

    무게가 225톤, 받침대가 47.5m, 동상 높이가 46m, 총 93.5m로 여인상의 손이 5m, 집게손가락 길이가 2.44m입니다. 1875년부터 1884년까지 약 9년에 거쳐 만들었는데 설계는 조각가 프레데릭 바르톨디, 조립은 에펠탑을 건축한 귀스타프 에펠이 맡았다고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350개 조각으로 나뉘어진 뒤 상자 214개에 실려서 군함에 의해 이동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미국 독립전쟁 승리 100주년 기념으로 자국의 미국진출을 위해 미국의 독립을 지원했던 프랑스가 만들어서 선물했다. 최초 착안자는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노예폐지론자였던 에두아르 르네 드 라부라이에(Édouard René de Laboulaye, 1811.1.11~1883.5.25)였습니다.

    제작은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 1834.8.2 ~1904.10.4)가 맡았으며,

    내부의 뼈대는 에펠 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했습니다.

    여신의 얼굴은 바르톨디가 자신의 어머니가 만 18살이던 시절의 모습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제작비용은

    프랑스 국민들의 성금 40만 달러였습니다.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이지만 실제로 미국 땅에 전달된 것은 1885년 1월 입니다.

    물론 이때도 여신상을 통째로 들고 온 건 아니고, 여신상의 겉면을 구성하는 300개의 구리판을 프랑스에서 제작한 다음 배로 미국으로 운반해 4개월 동안 재조립했습니다.

    그런데 배송을 완료했더니 정작 조립 과정을 충당할 예산이 없어서 상자에 담긴 채 항구 하역장에 박혀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는데

    이 사연을 들은 퓰리처에 의해 신문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고 금액이 금방 모였습니다.